외환·통화·물가간의 불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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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투자와 성장, 그리고 외환과 국내통화금융 및 물가의 움직임은 각각 독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관련 적으로 움직이는 동시에 대응관계에 있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 제 정책목표를 균형 있게 조절하는 것이 경제정책의 요체라 하겠으나 근자의 경제동향은 정책의 유기성이라는 척도에서 볼 때 매우 부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성장과 투자 및 수출을 자극하고 외환보유고를 쌓아 올린다는 방침은 필연적으로 통화량의 증가와 물가압력의 가중을 유발케 한다. 이러한, 논리적 인과관계를 조정하지 않고서 늘어나는 통화량과 올라가는 물가를 행정적으로 억누르려고 하는 것은 비록 그것이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근본적으로는 무의미하다.
올해 들어 4월말까지의 통화량은 년 율 34%선에 이르고 있으며, 때문에 물가안정 목표를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투자와 외환정책이 조정되지 않는 한, 원인치료는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러므로 원인에 대한 조정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결국 처방할 수 있는 방법은 행정적인 물가 억제와 금융억제 밖에는 찾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재정수지를 조절해서 통화 및 물가압력을 완화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정부가 하고자하는 방향에 비한다면 납세실적의 증가율은 오히려 미미하다고 판단하는 것이 정부의 생각일 것이다. 그 단적인 예로서 정부는 세수초과 예상치 2천5백억 원을 사용하기 위해 벌써 추경 예산을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로 충분하다.
재정이 경기대응 성을 잃고 있다면 손쉬운 민간금융의 억제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된다. 금융억제에도 불구하고 오르는 물가압력은 결국 행정력으로 누른다는 것이 순서가 된다. 이러한 관례는 그 동안 수없이 겪어온 것이며, 그런 뜻에서 경제정책의 세련 도는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향상되는 흔적이 적다.
그러나 금융억제 내지 실질적인 동결이라는 정책수단이 경쟁사회에 미치는 파급효과에 대해서 경제관료들이 얼마나 절실하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차제에 다시 한번 생각할 대목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금융이 강력하게 억제될 때, 필연적으로 금융력에 격차가 생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엄청난 이해상반현상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금융억제기에 대기업의 비대화와 중소기업의 위축 및 도산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은 어느 나라의 경우나 예외가 아니다. 이런 현상을 막는다고 금융대출 증가분의 30%를 중소기업에 할당한다고 하나 대출 순증이 없을 때에는 중소기업대출의 의무조항이 실질적으로 소멸되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동시에 대출금 회전과정에서 불리 점이 가중되는 것도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문제점 때문에 금융 억제 기엔 기업「코스트」가 보편적으로 상승하는 것이며, 그 주름살은 중소기업에 집중되게 마련이다. 그렇게 축적된 요소는 결국 물가 요인으로 반사되는 것임을 주목한다면 다른 정책을 조정하지 않은 채 금융억제정책만을 집행하는 것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편 각도를 달리해서 외환부문에서 통화가 창조되니까, 그 대금이 골고루 살포 될 수 있다는 생각도 경제의 양적 현상과 질적 현상을 동일시하는 모순에 빠진다. 총량으로서의 통화량과 국내여신 량이 충분히 공급된다고 해서 곧 산업별·기업규모별로도 모순이 없다는 판단을 가능케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수출에 집중되는 자금편재 현상 때문에 여타 부문에서 입는 자금압박은 더욱 가중되는 것이고, 그것이 생산성과 물가에 미치는 압력을 결코 가벼이 볼 수는 없다.
요컨대 경제정책의 유기성과 균형성에 대한 깊은 배려가 없이 대증 요법 적인 시책을 지나치게 밀고 나가는 방식은 재고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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