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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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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카터」미 대통령의 「아시아」정책은 적어도 이 단계에서는 「닉슨」+「포드」시대의 구상의 테두리 안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 구상은 미·소·중공을 극점으로 한 공존체제를 유지한다는 대 명제와 여타 「아시아」국가들과는 미국의 「아시아」이익을 최소한의 개입으로 지킬 수 있는 방향에서 재조정한다는 소 명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닉슨」-「포드」시대의 미국 대아정책은 강대국관계 조정을 통해 주변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을 취한데 비해 「카터」는 거꾸로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를 선행시켜 강대국관계로 접근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 점이 뚜렷해지고 있다.
주한미군 철수,「인도차이나」공산국들에 대한 접근, 북괴에 대한 모호한 태도, 일본과의 관계 강화 등이 그가 취임한 이래 취한 구체적인 행동의 전부였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러한 역방향의 접근은 그가 「키신저」와 같은 포괄적인 정책개념 없이 「아시아」정책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주한미군철수가 좋은 예로 꼽히고 있다. 그는 국가안보회의(NSC)에 철군계획을 입안하도록 지시한 후 보고서가 완성되기도 전에 『주한미군을 앞으로 4, 5년 안에 철수시키겠다』고 공표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극동에서 세력균형이 깨어지지 않는 방법으로 주한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그러한 선행조건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철수계획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평론가 「스탠리·카노」는 최근 「뉴스위크」지 기고에서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계획은 이에 관한 중공 및 소련의 입장을 냉철하게 분석하지 않은 채 선거공약 이행에만 급급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바있다.
「카터」의 이와 같은 일방적 정책수행은 예컨대 중동협상의 예비탐색으로서 「이스라엘」「이집트」를 위시해서 모든 당사국 지도자들을 「워싱턴」으로 초청해서 의견을 타진하고 있는 것과 뚜렷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카터」의 조급한 철군 계획은 미 국무성·국방성의 반발을 사고 있다는 징조가 보이고 있으며 78회계 년도 중 주한미군 철수를 시작하자는 내용의 「델럼즈」수정안의 부결이 보여주듯 의회의 분위기와도 어긋나고 있다. 「카터」에 대한 반발은 주로 「철군」에 역점을 두기 전에 이에 수반되는 전략 요인들을 치밀하게 검토해서 사후 보장책을 보다 신중히 강구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대 「아시아」정책의 근간이 되는 중공문제에 있어서도 「카터」는 아직 뚜렷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최근 「밴스」국무장관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타개 노력이 소련 측의 반발로 실패하자 소련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공과의 관계정상화를 서두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이 중요한 문제를 그 자체의 무게로 다루지 않고 특정목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고 있는 것이다.
「카터」는 취임 후 여러 공식 회견을 통해서, 또 미·일 공동성명을 통해서 「아시아」로부터의 군대철수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계속 「태평양세력」으로 남겠다고 강조했지만 그러한 원칙을 뒷받침할만한 통일된 정책구상이나 구체적 방안은 밝히지 않았다. 그는 「아시아」대륙에서 일어나는 지상전에 미국이 휘말리지 않도록 하면서 주로 전략전의 차원에서 방위우산을 제공하겠다는 「닉슨·독트린」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그 이상 발전시키지 않고 있다. 2차대전 후 30여 년간 미국의 「아시아」정책은 「군사력의 현존」에서 「문서상의 보장」으로 변천해왔다.
공산권을 포위하기 위한「트루먼」의 봉쇄정책이나 「아이젠하워」의 「도미노」이론, 월남전 확전을 정당화시킨 「존슨」의 태평양 「독트린」까지는 군사력에 의한 적극개입시기였다.
그러나 69년7월「닉슨」의「괌」선언을 분수령으로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방위』가 강조되면서 새로운 「아시아」정책이 채택됐다. 인지에서의 철수, 주한미군 1개 사단철수, 태국에서의 철수 완료,「필리핀」기지의 축소 등 일련의 손떼기 작전이 계속됐고 그 대신 중공과의 화해를 통한 대소 견제, 일본에로의 역할대체, 소련과의 SALT타결, 「유럽」우선주의의 계속 등 미국의 세계정책 속에서 「아시아」정책이 골격을 형성하고 있다.
「카터」의 「아시아」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이와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방법상의 차이가 뚜렷한데, 그것이 어떤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지는 현재로서는 분명치 않다.
「스탠리·카노」는「카터」가 「아시아」를 경시해서 세계의 다른 지역 문제들에 몰두하는 동안 「아시아」정책은 뒤로 미루고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어 그런 식으로 「아시아」를 뒷전에 미루면 결국 「아시아」문제가 저절로 끓어 넘어 큰 재앙을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재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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