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국인 「스위스」에 엄청난 핵방공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럽」사람들은 2만 여명을 한꺼번에 수용하고 원자탄 폭발에도 견뎌낼 수 있다는 「스위스」의 한 방공호가 공개되자 놀라기도 하고 웃어넘기기도 한다. 영세중립국이며 「알프스」산맥 속에 자리잡은 조그만 나라가 두더지처럼 남몰래 30여 년이나 평화를 만끽하는 시대에 이처럼 엄청난 방공호를 파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 납득이 안가는 눈치들이다.
여하간 「알프스」의 절정 「융·프라우」에 오르는 길목의 관광도시, 「루세르네」의 호수 옆 「소넨베르크」산(태양의 산)밑에 직경 16m·깊이 37m의 어마어마한 지하건물이 완성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속에는 2만1천 개의 침대·병원·회의실·오락실·은행·감옥·공동묘지까지 갖추어져 유사시 완전무결한 지하도시의 구실을 하게끔 되어있다. 4개의 입구에 각기 3백50t짜리 석문이 있어 9기압의 압력을 이겨낼 수 있고 경보가 울린 후 2시간 이내에 2만7백 명을 피난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문 앞에 「히로시마」에 투하된 정도의 원자탄이 폭발해도 문제없다는 설명이다.
「스위스」만큼 대피시설이 잘된 나라도 없을 것 같다. 「루세르네」시의 7만5천 여명의 시민 중 30%를 피난시키는 「소넨베르크」방공호는 극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이 나라에 2천∼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방공호는 이미 50여 개나 있기 때문이다.
1만대의 자동차를 넣을 수 있는 「취리히」대형 지하주차장도 방공호로 이용하게끔 고안된 것이다.
뿐더러 일반가옥들이나 「아파트」에도 대피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제네바」라면「레만」호를 낀 미도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집마다, 골목구석마다 방공호가 숨어있다. 인구 34만명의 이 도시에 30만4천명을 피난시키는 방공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 방공호 속에는 모두 최소한 2주간의 식량뿐만 아니라 포도주까지도 저장되어 있다.
평화시대의 낙천가에겐 광적 행동으로 보일 밖에 없다.
그러나 「스위스」인들에게는 이 방공호 만들기는 「국민들 각자가 유효하게 보호받기 위해」선택한 길이다. 1959년3월24일 국민투표를 통해 시민방위조항을 헌법에 추가했던 것. 헌법에 의거, 62년에 연방정부는 방공호 대량건설 법을 제정했고 63년부터 범국민적으로 착수했었다.
「파리」의 시사주간지 「르·포앵」이 『어느날엔가 우리들은 웃음을 잃고 「스위스」를 부럽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고 논평한 것은 의미 있는 경고가 아닐 수 없다. 【파리=주섭일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