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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맹권과의 접근방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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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주한 미 지상군의 단계적 철수방침으로 인해 우리 외교가 득을 보는 면이 있다면 우선 대 비동맹권 외교에서 일 것이다. 한동안 비동맹 제3세계는 한국외교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그렇게까지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이 지역에서의 한국과 미국을 동일시하는 인식태도가 지적될 수 있다.
반제국주의와 반 식민주의란 공통성을 지닌 비동맹 권에 있어서 미국은 기묘하게도 제국주의와 식민지주의의 보호자처럼 오해되어 왔다. 자연히 이들에게는 반미성향이 강하다. 한국이 미국과 동일시된다는 것은 결국 이런 반미성향을 뒤집어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외교에 있어 미국과의 우호관계는 핵심적인 것이지만, 적어도 그것이 객관적으로 한국외교의 주체·자주성을 가리는 정도가 되어선 곤란한 이유라 하겠다.
비동맹 제3세계에 대한 진정한 의미의 독자외교는 지난 75년8월「페루」에서 열린 비동맹외상회의에서 비롯되었다. 미국이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가운데 전개된 그때 우리의 비 동맹외교 결과는 참패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그때 독자외교를 한 보람이 있어 76년의 제5차 비동맹정상회담과 최근의 비동맹조정 위 외상회의에서 예상보다는 나은 성과를 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이번 비동맹조정 위 외상회의의 결과와「아프리카」의「수단」국과의 수교는 우리의 비동맹외교에 있어 한 작은 성과로 기록될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남북한외교경쟁에 있어 비동맹권은 아직 북괴에 훨씬 유리한 전장이다. 제3세계에 먼저 눈을 돌린 데다 마치 반 식민지주의적 민족주의자인양 하는 그들의 위장술이 어느 정도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어느 모로나 제3세계와의 공통성에서 우리가 남만 못할 까닭은 없다.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겪은 반식민지주의의 나라로서 정통적 민족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지금도 투쟁하고 있는 것이다. 대비동맹외교에 있어선 이러한 역사·정치적 동질성의 부각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
그 외에 비동맹외교를 수행함에 있어 상대국과의 경제협력을 주장하는 의견이나, 대외홍보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의견이 자주 제기된다.
사실 이번 대「수단」수교 성공의 바탕이 경제협력이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최근 개발도상국 가운데 발전의 한 유력한「패턴」으로 점점 주목을 받아가고 있는 형편이다.
따라서 개발도상국들에 우리의 경험과 기술, 그리고 경제협력을 제공하는 것은 유대를 강화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대외홍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경제협력이든 대외홍보든 간에 중요한 것은 개별국가들이 진짜 알고 싶어하고 또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일이다.
비동맹외교라 해서 일률적으로 똑같이 취급하지 않고 개개국가의 사정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되어야겠다는 것이다. 그러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가진 핵심에 접근하여 가장 그들에게 바람직한 협력의 내용과 홍보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바로 산 외교다.
최근의 몇 가지 대비동맹외교의 성과는 평가되어야겠지만, 그것으로 비동맹외교의 장래가 밝다든가, 자신이 있다는 식의 성급한 낙관은 금물이다.
오직 융통성을 지니고 기민하게 현지의 풍향과 필요를 파악하여 우리의 능력에 맞춰 상호이익을 추구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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