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판의 백화점-동남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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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동남아처럼 세계적으로 가짜 상품과 해적판이 판을 치는 곳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해적판 녹음「테이프」는 물론 서적·고급시계·술, 심지어는 여자용 내의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 연간 줄잡아 수백만「달러」어치가 팔린다.
그럴듯한 공장을 차려놓을 필요 없이 몇사람의 기능공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원본과 똑같은 것을 제조할 수 있으며 원가가 적게 먹혀 큰 이윤을 얻고 있다.
해적판의 압권은 뭐니뭐니해도 「카세트·테이프」. 「싱가포르」와 「홍콩」의 「카세트·테이프」는 추종을 불허할 만큼 세계적으로 일찌기 명성을 얻어온 터에 말레이지아·태국·버마에 이르기까지 밀수되어 성업중이라는 얘기.
노래가 녹음된 합법적 「카세트」가 3천원 미만의 가격으로 팔리는데 비해 해적판은 그 6분의 1인 5백원 정도의 헐값 이어서 「싱가포르」에서 날개 돋친 듯이 팔리거나 밀수출되고있다.
「버마」나 인도의 해적판 서적은 싸기로 세계에서 으뜸이어서 여행자가 귀국할 때 한아름씩 책을 사들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밖에도 「필리핀」과 인니 또한 해적판의 범람 지역이고 보면 동남아는 해적판 서적의 주무대라 해도 손색이 없다.
이밖에 「홍콩」에서는 화장품·음료수·술·의류·「블루진」·식료품 등 유명 상표의 그것과 겉모양이 똑같은 가짜를 생산하고 있어 가짜의 왕국으로 통한다.
반면 때때로 이 횡포는 인명 피해를 유발하는 비극을 초래, 사회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작년 「홍콩」에서 수십명이 가짜 중국 명주를 마시고 죽은 사건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최근에는 말레이지아의 「세렘반」에서 19명의 집단 중독사 참극이 발생, 가짜의 횡포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되고 있다.
과거에도 십수명의 목숨을 앗아간 적이 있으나 결국 이 같은 사건은 중국의 「샤오·초」 가 인기 주로 널리 애용되고 있는 것을 악용한 업자의 상술에서 비롯된 것.
이처럼 비극을 몰고 오기도하는 동남아의 가짜 사태는 소액의 투자로 진짜 못지 않게 호황을 볼 수 있어서 규제해도 쉽사리 없어지지는 않을 모양이다. 【홍콩=이창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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