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성 없는 전쟁…치열한 판매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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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신문들은 흔히 「모든 것을 진열하는 백화점」으로 비유된다. 여느 특정 단체나 계층·지역 등을 대표하거나 대상으로 삼지 않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중립주의」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비평도 받고 있다.
어느 일본인 평론가는 이를 「기능의 마비」라고 개탄했고 「프랑스」 언론인 「폴·보네」씨는 그 원인을 「지나친 경쟁」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일본의 헌법과 정부가 거의 완벽한 언론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는 것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 신문만큼 금기 사항이 많은 신문도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나 기업체·사회 단체, 그리고 중공이나 북괴에 대해서는 불가사의라 할만큼 비판을 자제하고 있다.
75년도 IPI (국제신문인협회) 공식 보고서는 『일본 신문들이 자유롭고 강력하지만 정부의 활동에 관한 논평에서 지극히 신중하며 의회가 문제삼기 전에는 어떤 사건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캐지 않고 묵과하는 것이 불문율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다나까」 (전중각영) 전수상의 금권 부패 정치의 내막만 해도 일간지들은 이를 파헤쳐 보도하기를 회피하다가 월간지 문예 춘추가 터뜨리자 어쩔 수 없이 따라 가는 기현상을 빚었다. 수상의 퇴진과 개각까지 몰고 온 엄청난 사건을 월간 잡지에 맡기다시피 했던 것이다.
광고주에 대한 몸조심도 대단하다. 대 「메이커」의 경우 부정 상품을 보도할 때는 으례 회사 이름이나 상표명은 밝히지 않고 넘어간다.
외국인들이 일본 신문에 대해 특히 이상하게 보는 것은 중공·북괴에 대한 편향적 보도와 한국·대만에 대한 일방적 비판 태도이다.
북경이나 평양에 특파원을 보내기 위해 이 두 정권에 보낸 일본 신문들의 추파나 비굴할 정도의 과찬 보도는 자주 비판 대상이 되어왔다.
「요미우리」 (독매) 신문은 동사 야구단의 왕정치 선수가 고국인 대만을 방문하려 했을때 중공의 비위를 거스를까봐 이를 금지했을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한국이나 대만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비뚤어진 생각을 가지고 사실과 동떨어지게 보도해왔고 최근에 와서야 약간의 반성론이 일고 있다.
「터부」에 쫓긴 일본 신문들이 좋아하는 것은 「센세이셔널리즘」이다. 독자의 취향에 쫓아 흥미 본위의 감각적·선정적인 글과 사진을 대담하게 취급한다.
어느 혹독한 평론가는 『일본 신문들이 만인을 쫓아다니다 결국은 만인을 놓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이런 병폐의 원인으로 지적되는 일본 신문들의 판매 경쟁은 살벌할 정도다. 특히 1, 2위를 다투는 「아사히」 (조일)와 「요미우리」 (독매)의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으로 비유돼 왔다.
신문 확장을 위해 남비·주전자까지 경품으로 붙여준다. 독자 투고난의 기준은 내용보다는 독자들의 비위에 달려 있다.
독자에 영합하려는 경향은 기사의 내용에까지 침투해 있다. 그 때문에 오보가 많고 내용이 천박하며 깊이가 없다는 혹평도 듣는다.
동경에 주재하는 어느 미국 특파원은 『일본 신문의 「스크랩」을 뒤지는 일은 흥미롭다』고 말했다. 추측 기사가 너무나 많은 반면 실제로 들어 맞는 경우는 드물다는 설명이었다. 그는 『역사적인 배경이 얕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오던 길에 동경에 들렀던 「키신저」도 수행 외국 기자들에게 『일본 신문을 보면 내 행적을 훤히 알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일본 신문의 추측 보도를 비꼰 적이 있다.
부수 경쟁은 경영 구조의 변혁까지 몰고 왔다. 최근 「아사히」는 교육 방송인 NET-TV를 병합, 계열화했는데 이는 신문에서 오는 결손을 TV로 보완하려는 상업 전략에서 발상된 것이지만 신문의 PR와 판매 확장에 엄호 사격을 해주고 있다.
거의 모든 신문들이 최근 부대 사업을 활발히 벌이고 있는데 그것은 각종 흥행·관광 등 일반 독자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업종들이 많다. 이 부문에서 특히 성공적인 신문은 「요미우리」다. 「요미우리」의 「자이언츠」 구단이나 「요미우리·랜드」가 그 대표적.
일본의 3대 신문이라면 「아사히」 (8백만부) 「요미우리」 (7백70만부) 「마이니찌」 (4백50만부)를 꼽는다. 「아사히」는 진보적인 제작으로 지식인·청년·학생 등 진취적인 세대들에게 뿌리를 박고 있다.
「요미우리」는 각종 흥행 사업과 「센세이셔널」한 흥미 기사로 독자를 확장, 「아사히」를 바짝 뒤쫓고 있다.
그러나 「마이니찌」는 별로 특색이 없고 어중간하여 침체 상태를 못 벗어나 경영자가 바뀔 지경에 이르렀다.
일본 신문들이 당면한 제1의 과제는 양의 경쟁에서 질의 경쟁으로 돌아가 권위와 영향력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일본식자들은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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