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 편수의 문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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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예능과목을 제외한 중·고교의 모든 교과서를 국정으로 획일화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일인가. 최근 큰 물의를 자아냈던 검인정교과서회사의 폭리·탈세·증수뢰 같은 부정을 봉쇄하는데는 교과서의 국정화가 한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교과서를 사는 것이 거의 모든 국민에 관계되는 일이라서 공급과정의 제반부조리를 없애는 것은 극히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부조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법으로 중·고교교과서의 국정화까지 생각하게 된 고충은 이해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교과서편수가 그렇게 간단히 공급과정의 부조리제거란 안목만으로 좌우될 성질의 것인가. 교육의 내용과 질의 바탕이 되는 교과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선 공급이란 측면보다는 역시 그 내용이 어떻냐가 더욱 중시되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교과서 내용의 향상이란 면에서 지금까지의 검인정방식과 정부가 맡겠다는 국정 방식 중 어느 쪽이 더 합당할까. 이는 두고두고 논란될 문제로 쉽사리 이렇다 저렇다 일률적인 결론을 내리기는 어렵다.
더구나 검인정방식이라 하더라도 지금같이 몇몇 과목에서 교과서의 단일본이 나오는 경우는 사실상 국정교과서나 크게 다를 것이 없다. 그렇게 단일본을 낼 바에는 오히려 공급과정의 부조리나 없애 싼값으로 국정교과서화 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주장이 나옴직도 하다.
그러나 교과서를 단일본화 하거나 국정화하면 이에 못지 않게 많은 문젯점이 따르는 것도 간과되어선 안된다. 우선 학문의 다양한 발전을 저해할 위험성이 없지 않다. 교과서가 국정화되면 자연히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의 교과서 저작 기회가 봉쇄된다. 이는 교과서 저술에 참여했던 학자들의 수입을 격감시킬뿐 아니라, 새로운 학문적인 성과가 신속하게 교육에 반영되는 기회를 줄이게 할 것이다. 자유 경쟁을 통한 교과서 질의 향상 기회가 봉쇄된다는 것이다.
또 학자 아닌 관리가 교과서 저작을 주도하다 보면 학문적 고려 이외에 관료적 독선이 끼어들기 쉽다. 그 경우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작은잘못이라도 교육에 미치는 역기능이막심할 수도 있다.
특히 학문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문에서 국정교과서가 어떤 주장을 택하느냐도 문제려니와특정주장을 택했을 경우 이는 유권적 해석처럼 돼 여타의 다양한 연구노력에 재를 뿌리는 결과가 되기 십상이다.
지금까지도 국민학교의 경우는 모든 교과서를 국정으로 해왔으나 거기에는 그런대로 수긍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국민학교는 의무교육인데다 상당부분이 무상공급되고 있어 국정이아니고는 물리적으로 곤란한 측면이없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논리가 그대로 상급학교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것인가.
국민학교와 달리 중·고교는 선택에 의해 제돈 내고 중등교육을 받는 곳이다. 기왕이면 획일적인 교육이 아니라 학교별로 특성에 맞는 교과서를 골라 좀 더 알찬 교육을 해야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기왕 검인정방식으로 하던 것마저 국정으로 후퇴시킬 것까지는 없지 않을까. 교과서편수에서도 자유경쟁의 원리는 역시 존중될 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 공급과정의 부조리야 그것은 그것대로 시정할 길은 얼마든지 있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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