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병사의 유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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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본의 한 교포 작가가 쓴 모국 방문기를 읽은 기억이 난다. 30여년 만에 조국을 찾아온 작가였다.
그는 비행기에서 모국의 산하를 내려다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감상적인 심정이 없지도 않았겠지만, 황량한 산맥들은 더한층 그를 울적하게 만든 것 같다.
「유럽」의 하늘을 날아보면 그 울창한 산림들이 저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와 번영을 보여주는 것 같다. 온대 지방일수록 그것은거의 예외가 아니었다.
전화는 어느 한 시절도 멎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산과 숲은 상처를 받지 않았다.
2차 대전 무렵 「이탈리아」의 한 병사는 적지에서 총상을 입고 신음하고 있었다. 적지의 어느 노파가 그를 극진히 간호했지만 끝내 생명을 구하지 못했다. 그 병사는 눈을 감으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당신에게 나는 아무 것도 보답할 것이 없습니다. 할머니! 그러나 내 고향의 울창한 산과 맑은 햇볕을 드리고 싶습니다.』어느 기자의 종군기에 나오는 감동적인 이야기다.
우리 나라는 지난 30여년 동안 무려 90억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오늘의 산엔 그래도 형해 같이 헐벗은 모습하며 메마른 바람뿐이다. 통계를 의한 식수, 식수만을 위한 식수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 산림의 99%는 5년생 이하의 유목들이라고 한다. 가히 그 황폐의 정도를 짐작할 수 있다.
근년엔 산지를 개발하고, 산림을 경영하려는 독지가들의 살아 있는 일화들이 많다. 헐벗고 버려진 박토를 일구어 비료를 뿌리고 나무를 가꾸어 몇년 사이에 그 시야를 바꾸어 놓았다. 황량한 바람이 불던 산등성이며 벌판의 지평선이 눈을 씻은 듯이 푸르러진 것이다.
한 생태학자의 보고에 따르면 인구 1인당 생존에 필요한 환경 수림은 3천평방m나 된다. 가령 동경의 경우, 1천만명의 시민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려면 적어도 동경의 10배 넓이에 달하는 수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광엽수림은 1「헥타르」당 68t의 먼지를 흡수한다. 침엽수의 경우도 32t의 먼지를 빨아들인다. 산림은 그만큼 우리의 환경을 깨끗하게 해준다. 조물주는 우주를 만들면서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았던 것 같다.
다시금 식목일을 보내면서 우리는 자연의 회복이 곧 인간의 회복이며,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발전과 개발도 자연과의 조화에 그 이상이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 있어야 열매를 따는 사람도 있다. 희망을 심는 마음으로 한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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