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에 얽힌 재일 교포의 비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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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식을 앞둔 재일 동포의 모국 방문이란 벅찬 기쁨과 함께 모국 분단의 비극을 새삼 느끼게 하는 두가지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모국 방문 직전 조총련 조직에 의한 김행강 양 납치와 북송선 출항 직전 집단 숙소에서 김미혜 양의 탈출이 바로 그것이다. 모두 아버지와 함께 하나는 남으로 가려다, 또 하나는 북으로 가려다 생긴 조국 분단의 비극을 새삼 느끼게 하는 사건들이다.
그런 면에서 얼핏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피상적으로 나타난 것이 그럴 뿐 본질적으로 성격이 다른 사건이다.
우선 북송을 마다한 미혜 양은 스스로의 판단과 선택에 의해 북송 길을 단념한데 비해 행강 양은 조총련 조직원의 납치에 의해 모국 방문이 지체된 것이다.
미혜 양은 스스로 북괴와 조총련의 마수부터 탈출을 했다. 행강 양은 조총련의 강제 납치로 며칠간 모국 방문을 늦추게 되었을 뿐이다.
이 두가지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증명된 것은 북괴와 그 하수인인 조총련 조직의 비인간성이다.
북괴는 지난 59년 일본 및 북한 적십자간에 체결된 소위 「캘커타」 협정에 의해 지금까지 약 10만명의 재일 동포를 데려갔다. 북한의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갖가지 감언이설과 회유·협박 끝에 데려간 북송 동포들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어려움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경험한 사람들이기에 북한의 숨막히는 통제 체제에 정신적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데다 북한 동포들에게 줄 영향이 두려워 더 혹심한 감시를 받고 있다고 한다.
아마 미혜 양은 북송 선을 타기 위해 집단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그 살벌한 분위기에서 북한의 생활 실태가 어떠하리란 것을 직감했던 모양이다. 『감시가 심하고 분위기가 살벌한데다 외부에 전화도 못 걸게 하는 것으로 보아 북한에 가면 생지옥일 것이란 생각』에서 탈출을 결행하게 됐다는 것이다. 집단 숙소에서 그런 불안감과 깊은 의혹을 갖게될 사람이 비단 미혜양 뿐이 아닐 것이고 보면 최종 의사 확인 기회만 보장되더라도 북송의 비극은 훨씬 줄어들는지 모르겠다. 특히 본인의 북송 의사 확인 제도가 있는 줄조차 몰랐다는 얘기는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저 가장이나 발언권 있는 가족 한 두 사람만 무슨 수로든 회유가 되면 대부분의 가족은 스스로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북송되고 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더구나 압력과 회유에 못이긴 한때의 잘못 생각을 돌이킬 길마저 없었다는 말도 된다.
이러한 북송의 현실은 북괴와 조총련 조직의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랄함과, 내보내는데만 정신이 팔린 일본측의 무관심을 보여주는 실증이다. 그렇더라도 이러한 현실을 고치지 못한 우리측의 자책도 없어서 안될 일이다. 아뭏든 일본에서 남북한의 입장은 비교가 안되게 우리에게 유리한 처지인 만큼 북송 자체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철저한 자기의사 확인만은 거치도록 해야하겠다.
그리고 모국 방문 직전에 납치되었다 풀린 행강 양은 미성년자인만큼 더구나 이러한 납치행위가 일본 당국에 의해 철저히 조사 처벌되도록 해야 한다.
조총련이 무슨 짓도 할 수 있는 조직임은 우리가 이미 겪을 만큼 겪었다. 마땅히 그러한 그들의 불법·비인간성이 우선 규탄되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으나, 그러한 규탄만 가지고는 아무런 뜻이 없다. 시급한 것은 그 같은 불법 행위를 철저히 응징해 재발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의 적극적인 협조가 그 열쇠인데 이는 결국 우리 정부의 보다 적극적인 대일 외교 노력으로 직결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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