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경제 정책의 탈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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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몸이 커지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듯이 경제 환경과 체질이 달라지면 그 제도나 적용도 당연히 달라져야 할 것이다. 제도가 자주 바뀌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새로운 조류에 방해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 경제는 3차례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끝내고 금년부터 4차 계획 단계에 들어갔다. 경제 개발이 처음 시작되던 60년대와 지금과는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엄청난 변모를 했다. 특히 70년대 후반기에 들어선 한국을 둘러싼 국제 환경이나 한국 경제 체질은 급속도로 바뀌고 있다.
금년으로 수출입 규모는 2백억「달러」를 돌파하고 국민 총생산에 대한 수출입 의존도도 70%를 상회하게 된다. 싫든 좋든 한국 경제는 수출 주도에 의한 고도 성장으로 줄달음 치지 않을 수 없는 추세다. 한국 경제의 대외 의존도 심화는 필연적으로 경제의 국제화를 강요하고 있다. 세계 시장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하며 국제 수준에 상응한 생산성과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경제 정책과 운용도 당연히 앞서서 대응해야 할 것이다. 정부에서도 새로운 경제 환경과 체질에 대한 인식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는 줄로 아나 정책과 제도 면의 대응 속도는 다소 느린 것 같다.
현 경제 제도의 골격은 60년대에 대부분 마련된 것이다. 외환·무역·재정·금융 제도가 모두 그렇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60년대엔 경제가 극도로 어려웠고 정부가 민간의 손을 이끌어 경제 성장의 시동을 걸어야 했었다.
그땐 경제 제도의 근간이 어떻든 개발을 서두르고 정부 주도의 자원 배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든 면에서 정부가 통제와 목자적 지도를 했다.
외환·무역 면에서만 보더라도 될 수 있는 대로 돈을 못쓰게 하고 수입을 줄이는데 주안점을 두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 만으론 부족하다. 외화를 못쓰게 하는 것보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또 경제의 대내외 균형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므로 외화가 쌓이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이냐도 문제다.
대외 거래 면에서도 과거와 같이 일방적으로 수출 증가·수입 억제만을 강행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한국의 무역 규모가 2백억「달러」를 넘게 되면 교역 상대국으로부터 민감한 대응을 받게 된다. 벌써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미국으로부터 민감한 대응을 받아 대규모 구매 사절단을 4월초에 파견했다. 산업 정책면에도 과거와 같이 일방적인 자국 산업 보호에만 안주할 수 없게 되었다.
무역 의존도의 확대에 따라 개방 체제에의 이행이 불가피한 만큼 서둘러 국제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 또 수출 증가나 경제 성장의 효과를 국민 전체에 확산하기 위해서도 자국 산업 보호의 명목으로 국제 수준보다 몇배씩 비싼 가격을 그대로 방치할 수 없을 것이다.
재정 면에선 한정된 자원을 정부와 민간이 어떻게 나누며 정부 행정이나 정부 사업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추진하여 사회적 「로스」를 막느냐가 당면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모든 면에서 한국 경제가 당면하는 과제나 시대적 요청은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물론 이런 여러 문제들은 상호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어 종합적인 조정을 필요로 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문제들에 착안, 이미 부분적인 손질을 하고 있으나 새 시대가 요구하는 종합 전략을 마련하는 작업엔 아직 착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외환 거래 등 일부 부분에선 상당히 앞서간 부분도 있으나 여전히 고정 관념과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례가 많음은 심히 우려되는 사태다.
발상 전환의 경직성으로 날로 확대 발전하는 경제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것도 많을 것이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계속 어린양을 이끄는 목자적 역할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부는 한번 냉정히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한국 경제의 국제화를 위해선 먼저 정책 발상부터 새롭게 되야 할 것이며 새로운 발상에 바탕을 둔 새로운 정책 체계의 마련이 시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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