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절전의 앞과 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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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소비를 앞장서서 권장했던 정부가 마침내 절전을 강제화 하는 입법조치를 취했다.
그것도 발표 1주일 후(4월1일)부터 시행, 위반자에 대해선 10만원이하의 벌금을 물리게 한다는 것이다.
작년여름이후 계속 나빠진 전력사정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 그동안 다각적인 절전 「캠페인」을 벌여왔던 것은 다 아는 바로서 이로써 절전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이미 상당히 높아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새삼 강제절전 조치를 취하게 된데에는 그럴만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리라 물론 짐작은 간다.
예비전력율이 3∼5%에 불과, 어느 발전소라도 고장이 나거나 수리를 해야하는 때는 제한절전이 불가피하고, 더구나 공장신증설·농어촌전화·가전제품의 급속한 보급에 따른 전력소비의 격증으로 전력난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것도 뻔하다.
올해 새로 건설되는 발전소는 여수화력·고리원자력1호기·인천화력3호기·「개스·터빈」등 4∼5개에 이르고 있지만 대개가 연말께 준공되고 여수화력만이 5월부터 발전에 들어가기 때문에 공급 증가량이 연평균 소비증가량(약18%)에도 훨씬 미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사정은 이미 훨씬 이전부터 능히 추측이 가능했던 바로서 이번 정부의 조치를 전적으로 합리화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즉 입법조치를 취해 가면서까지 강제절전을 해야하는 판국에 이르도록 정부는 왜 충분한 사전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며 절전은 꼭 강제적으로 해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절전가들에게 자칫 적지 않은 벌금을 물리게 하는 조치를 사전 계몽기간도 없이 이를 불과 1주일의 시한을 두고 발표하는 발상도 그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사정이 급박할 때 효과의 극대화를 기하기 위해, 또 불필요한 낭비를 억제하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전적으로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생활에 커다란 불편과 경제적 부담증가를 강요하게 될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는 항상 그러한 효과를 다른 면에서 상살하고도 남을 사회적 반작용을 수반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4월1일부터 실시되는 강제절전 조치에 따라 일반가정은 전등마다, 큰 건물 또는 사무실은 6개 등마다 하나씩 따로 「스위치」를 부착해야 하고, 「샹들리에」·수은등·장식용 전등·「네온사인」·투광기 등은 일체 사용이 금지된다.
사무실·접객업소·공공시설·상점 등은 일정한 밝기 이상의 전등을 쓸 수 없도록 조도기준도 설정했다. 이리하여 거리와 가정은 다같이 지금보다 훨씬 어두컴컴해질 것이고 대부분의 상점·접객업소·각종 시설물에서는 조도기준과 전기설비 기준에 맞도록 전등장치를 새로 바꿔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얻어지는 절전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당국이 분석한 바로는 연간 전체전력소비량의 0·6%에 해당하는 1억3천2백만kw/H로서 매시간 1만5천kw의 전력을 절약하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발전용기름의 절감액은 약5백50만「달러」로 추정된다.
뒤집어 말하면 1만5천kw짜리 「개스·터빈」이나 소형발전소 하나만 더 세우면 해결할 수 있는 절전량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전력면에 있어서도 절약의 미덕은 그것이 아무리 적을지언정 결코 과소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연간 20억「달러」(금년추정)를 들여 수입해오는 기름의 약30%를 발전용에 쓰고 있으며 절약된 전기가 다른 산업 발전에 유효하게 쓰인다는 사실을 안다면 절전은 애국행위의 차원에서 실천되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예컨대 지금부터서라도 4백만호에 달하는 수용가들이 한집 한 등 끄기에 더 힘을 기울인다면 무려 24만kw 규모의 발전소를 하나 세우는 것과 맞먹는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절전은 강제로 될 일은 아니며, 오직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를 얻는데서만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부문을 막론하고 강제를 만능으로 아는 사고방식은 지양되어야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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