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도 통화도 힘든 전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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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달기 어렵고, 통화하기 힘들고 요금 또한 턱없이 비싼 것이 우리 나라 전화다.
이 때문에 「문명의 이기」인 전화가 전화가입자와 이용자의 울화통을 터지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음은 한심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으뜸가는 문제는 「전화기근현상」이다. 해마다 가설전화의 절대수는 늘어나고 있으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만성적인 적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월말 현재 전화 적체 건수는 전국적으로 15만8백24건으로, 지난해 같은 때보다도 7% 가까이나 늘어났음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서울의 경우는 무려 22%의 증가라는 가속적인 심화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 때문에 청약을 해놓고 1년반 이상 기다린 것이 약8천건, 1년에서 1년6개월이 약7천건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같이 늘어만가는 전화정체 현상을 일부나마 해소하기 위해 체신부는 22일 6순위로 세분돼있던 현행 전화청약 순위 제도를 4순위까지로 통합 조정키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순위 조정만으로써 전화기근 현상이 해결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이미 76년에 청약순위 9등급을 7순위로 줄여 조정했고, 다시 6순위로 조정했으나 별다른 효과가 없었음은 물론 그 뒤로도 사정은 악화일로로 거듭했던 것이다.
올해도 22만 회선을 새로 늘린다고는 하나 이런 정도의 증설로는 적체현상 해소는 말할 것도 없고, 급증하는 수요를 도저히 충족시키지 못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전화 기근현상 다음으로 이용자를 골탕 먹이는 것은 통화의 어려움이다. 걸핏하면 전화가 불통되고, 몇 번씩이나 「다이얼」을 다시 돌려야 겨우 걸리는가 하면, 그것도 혼선으로 잡음이 나고 오접으로 엉뚱한 곳이 나와 실수하기 십상이다.
전화기도 7년에 한번씩은 바꿔야 하는데도 30만대가 연한이 지난 낡은 것이니 고장이 자주 나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노릇이라고도 하겠다.
고장율에 있어 우리 나라 전화는 한 달에 1백대 중 5대 꼴로 고장을 일으켜, 일본·서독 등의 2%에 비해 우리는 그 2·5배에 가까운 4·9%나 된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재투자를 않는데서 오는 노선고장·옥외노후배선·낡은 전화기 등이 그 직접적인 원인이라 하겠으나 보다 근본적인 결함은 전화교환방식 자체의 낙후성에 있다.
이런데도 전화값만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니 기가 찰 일이다. 백색전화의 경우 광장전화국의 45국은 자그마치 1백14만원이나 하고 평균 72만원대라니 놀랄 뿐이다. 가설료도 25만원이나 하니 이는 구미의 10내지 20「달러」에 비하면 25배 내지 50배나 되는 놀라운 액수다.
이처럼 심각한 전화의 적체현상·고장사태·「서비스」 부족현상을 타개하는 근본 대책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서 전화교환방식 자체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일이라 하겠으나, 방법상 중요한 것은 우선 전화사업에서 생긴 흑자를 재투자하는 일이다. 체신부는 75년에 3백40억원의 흑자를 냈고, 68년 이후 76년까지 계속 막대한 흑자를 내 왔다. 그러면서도 76년의 경우 1백억원을 철도적자보전에, 다른 1백억원을 우정·전신부분 적자 보전에 돌리면서 전화 가설·시설확장 및 노후장비 대체는 소홀히 하고 전화요금만 올려 받고 있으니 어찌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정부의 입장에선 전화나 철도나 같은 정부사업일 수 있으나 전화가입자와 이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수익자 부담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체신부는 번 돈을 딴 곳에 쓰고 가입자들의 주머니만 넘겨다보는 일을 지양, 지속적인 재투자로 전화사업이 안고있는 문제들을 해결해 주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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