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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용<성대교수>|자연의 보복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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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오1시「버스」가 시청 앞을 지나간다. 시커먼 기체가 시선을 가린다. 안개 같지는 않고 이게 바로「스모그」일까. 차장 밖으로 내다보고 있던 불문학자 C교수가 불쑥 말한다. 『암만해도 자연의 보복을 받을 것 같애.』
엄밀하게 말해 자연파괴는 인류가 지구 위에 나타나면서 시작됐다. 자연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것이었다. 제3빙하기가 끝난 다음 일어난 농업혁명은 자연의 엄청난 개조를 수반했고, 그 결과는 생태학적인 혁명이라고도 말해진다.
중세「유럽」에서 농업기술의 혁신이 있었을 때 자연 파괴의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농토를 넓히기 위해 풍차의 바람개비로 쓸 재목을 구하기 위해 삼림이 벌채되었다. 바퀴 달린 무거운 쟁기로 부자비한 밭갈이를 하게 되자 생산은 껑충 뛰어 올랐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였었지만 이제 무서운 착취자로 변했다. 이같은 자연관의 변화는 인간을 자연의 주인으로 본「그리스도」교적 개념 탓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환경오염도 이때 비롯된다.
13세기말 이미「런던」에서는 무연탄의 연소에서 나오는「스모그」의 문제가 일어났다.
근대 과학이 태동할 무렵, 영국의 철학자「프랜시스·베이컨」은 힘으로서의 지식, 즉 인류에게 유용한 과학을 부르짖었다. 이로써 자연 정복의 깃발은 높이 올랐다.
그러나「베이건」의 믿음이 본격적으로 실천에 옮겨진 것은 1850년께였다.
산업혁명의 선두를 달린 영국에서는 공장이 들어서면서 전원 풍경이 깨져갔다. 「찰즈· 디킨즈」의 작품『광량한 집』(1853)에는 흐려진 햇빛이 묘사되어 있고, 오염된 공기가 호흡기 질환을 일으켰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렇게 비싼 댓가를 치르고서야 영국은 5대양·6대주를 지배하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가속화함에 따라 20세기 후반 환경오염은 범지구적인 문제로 발전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은 지구라는 특이한 환경의 산물이며, 따라서 자연의 균형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다. 과학기술이 이 균형을 무참하게 깨뜨려 이른바 생태학적 위기가 빚어진 것이다.
전세계가 공업화를 향한 필사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기술의 부산물인 각종 오염물질이 공기와 땅과 물을 더럽힌다. 선진국들은 전국이 도시화하고 지구의 마지막「프런티어」라 할 수 있는「브라질」·「인도네시아」의 처녀림에는 공장과 고속도로가 들어서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인류가 언제까지 살아 남을 수 있을까 하는 과학적인 회의가 일기 시작한 지도 벌써 오래다. 지구 위에 살았던 생물 중에서 98%가 멸종했다는데 인간만이 절대로 예외라는 보장은 없다. 자연을 회복하자는 운동은 활발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자동차를 타지 않고 수세식 변소를 쓰지 않으면서 환경보호를 외치는 양심의 소리는 미약한 반응을 얻고 있을 뿐이다.
25년전「런던」에서「스모그」로 수천명이 죽었을 때만 해도 관계없는 남의 일로 보아 넘긴 우리였다. 그런데 이제 자연파괴·환경오염은 다급한 우리의 일로 되고 말았다. 60년대 이후의 급격한 경제성장은 발전이냐 환경보존이냐의「딜레머」를 안겨주고 있다.
최근에 말썽난 산업쓰레기의 수입은 나만 잘 살아보자는 사고방식의 결과이다. 그리고 결국 이웃과 동포, 나아가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자살 행위임도 명백하다. 정책적 배려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아야겠다는 마음가짐 없이는「살기 좋은 서울」건설계획도 실패할 것이다.
함께 살아야 할 것은 인간뿐 아니라 자연도 포함된다. 자연을 정복하려 하면 무서운 보복이 따른다는 것을 명심하자.

<저자약력>
▲1937년 서울태생 ▲59년 서울대 화학과졸 ▲67년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졸 ▲70년 미「인디애나」대 과학사학과졸 ▲77년 성대교수(현)
▲『「해겔」의 일 원론적 자연철학』·『13세기 연금술 이론』등 논문과『종교와 과학『등 역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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