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이「먼저 해야할 일」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부·여당 연석회의에서 행한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 내용은 주한미지상군 철수문제 대두의 전후 사정과 앞으로 우리 국민이 지향해야 할 바를 설득력 있게 밝혀 놓았다.
미국의 의도가 어떤 것이든, 우리로서는 미지상군 철수론이 69년「닉슨·독트린」연장선상에 서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이에 대해 일찍부터 일관된 자주적 대비조치를 취해 왔으며, 이제 그것이 더욱 명백히 드러난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국면 변화를 도리어 전화위복의 능동적인 계기로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주한미지상군 철수론이 어제 오늘의 갑작스런 사건이 아니라 벌써 8년 전에 움튼 장기계획의 일환이었으며, 정부가 그에 대해 충분한 자주적 대응을 지속해 왔음이 뚜렷해진 이상 국민으로선 새삼스런 의구심에 사로잡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국민 모두가 각자의 주어진 자리에서 최대한의 자각과 사명감을 가지고 자주국방과 자립경제에 전념하기만 한다면 무슨 큰 문젯거리가 있겠는가.
단지 이제 와서 돌이켜 볼 때, 「닉슨·독트린」을 실천하더라도 미국이 좀 더 여러 가지 사정을 차근차근 챙겨가며 차분히 생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을 뿐이다.
미국도 잘 알겠지만, 한국은 미국의 첫째 가는 우호국이요, 맹방이다. 세계 곳곳에서『양키·고·홈』소리가 들렸지만, 한국에선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미국내외를 막론하고 그렇게 반전운동이 극성을 떨었을 무렵에도, 한국민은 미군병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월남「정글」에서 싸웠다.「터키」가, 태국이,「필리핀」이 미군기지를 마다하고 기지 사용료를 달라고 했다지만, 한국은 그럴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한국이 미국에 대해 그런 나라들보다 덜 중요한 지역이냐 하면 그렇지가 않다. 어떤 전직 미국고관은 한국의 중요성은 서「유럽」에 맞먹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게 중요한 이 지역이, 하루아침에「필리핀」보다 못한 지역으로 뒤바뀌어졌을 까닭은 없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미국이 좀더 일의 두서를 차근차근 챙겨야 하겠다는 것으로 귀착된다. 철수를 이야기하기 전에『먼저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미국은 한반도문제의 내력에 대해 근원적인 잭임의 일단을 져야 할 나라이니, 나가는 것이 급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 회담이나 남북 불가침 등이 성사된 후 한반도의 일을 일단 매듭지어 놓는 일이 더 급한 것이다.
그것이 매듭지어지기도 전에『전쟁이 터지면 미 지상군이 자동적으로 개입될까 봐』철수를 거론한다는 것은, 『전쟁이 터졌는데도 월남에 한국군이 가서 싸워준』일에 대한 예가 아니다.
어쨌든 미국은 좀더 신중하고 차분하게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 사안의 복잡성을 두고 보더라도 서두를 필요는 조금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도 좀더 실질적인 입장에서 이 편의 의견도 제시하고, 그 쪽의 이야기도 들어 보고하는 가운데 보다 더 좋은 결론을 함께 끄집어 낼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한반도는 누가 뭐래도 미국의 이해가 직결된 동북아의 요충이며, 이 요충을 지켜야 한다는 점에서 두 나라의 이해는 완전히 일치되고 있다.
그 점에서 한국과 미국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고, 그럴 이치도 없는 사이다. 이 불가분의 사이는 어떤 일이 있어도 양측에 의해 성의 있게 존중되고 강화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은 한국의 정부나 국민이 일관되게 견지하고 있는 태도이며, 또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믿고 있다.
모든 문제를 사리에 따라 호혜적으로 절충하고 합의하는 가운데 우리의 자주·자신과 한미 유대가 원숙한 통합성을 발휘해야 할 것으로 믿어진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