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좌파연합의 득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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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프랑스」의 좌파연합은 13일 실시된 지방자치구의 시장 및 시의원 선거에서 52%의 득표율로 득세했다.
이번 선거는 78년의 국민의회 총선과 81년의 대통령 선거를 앞에 둔 일종의 격추전이었다는 데에 각별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었다.
만약에 좌파연합이 이 기세를 몰아 내년 총선을 제압할 경우「지스카르」체제의 안정은 붕괴되고「프랑스」는 서구 최초의 좌경국이 될 위험에 직면한다.
「나토」내부에 공산당이 참정하는 나라가 생겨난다면 서방 동맹의 군사기밀이나 협조체제가 온전할 까닭이 없다.
결국 이런 불길한 개연성에 대한 책임은 아무래도「프랑스」정계의 양극화와 우익 진영의 분열에 있다고 밖엔 불 수 없다.
상당수의「프랑스」국민은 어느 정도의 개혁은 바라면서도 공산당식 처방만은 분명 바라지 않고 있다. 보수적이고 자유분방한「프랑스」인들이 공산주의를 경계한다는 것은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불행히도「프랑스」에는「드골」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중도다수파」정당이 볼만한 것이 없다.
그 점이「프랑스」의 정치가 영국 또는 서독·「스칸디나비아」정치와 다른 점이다.
영·독 등의 경우엔 유권자들은 별다른 불안감이나 우려감 없이 보수당과 노동당, 또는 기민당과 사민당 사이를 번갈아 가며 왕래할 수가 있었다. 양쪽의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았고, 어느 면이 정권 하든 시책상의 큰 차이나 변동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프랑스」에는 전통적으로 그런 중도 정치가 정착하지 못했고, 오히려「드골」시대를 지나오는 동안 정계 판도는 갈수록 양극화되기만 했다. 그래서 중도 개혁파인「지스카르」대통령은 독자의 정치적 다수파로 정착하지 못하고 선거기나 집권시엔 항상「드골」파의 힘을 빌어야만 했으며. 역시 중도좌파라 할 사회당도 독자의 길을 걷지 못한 채 공산당의 힘을 비는 측으로 기운 것이다.
북구의 경우 사민당이 공산만을 외면하고 독자의 반공적 중도정치를 고수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분명「프랑스」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다. 범우익 진영대 범좌익 진영의 이원적인 대결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편이 더 단결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경쟁에서 사회·공산은 일찍부터 공동 강령을 만들고 공동 후보를 내세우는 등 집권을 노린 전술 발휘에 활기를 보였었다. 그런데 우익 진영에선 그와는 달리「지스카르」파와「쉬라크」파가 분열하여 스스로의 전열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지스카르」의『온건한 개혁』마저 반대하여 수상자리를 박차고「파리」시장선거에 출마한「쉬라크」파의 명분은「좌파견제」에 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가 약화시킨 것은 좌파보다는「지스카르」, 그리고「지스카르」보다는 범우익 진영의 전열이 아니었던가.
「드골」파와「지스카르」파가 그와 같은 자체분열을 신속히 시정하느냐 안 하느냐는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그것을 시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더 큰 불행에 대할 책임은「프랑스」의 좌경화를 바라지 않는 모든 사람에 대해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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