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란의 간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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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지만 3만3천8백 평방㎞의 「네덜란드」땅은 이민족의 혼이 얼룩진, 그들 자신이 만들어낸 경건한 창조물이다.

<연 수출 3백50억불>
인구와 면적이 우리 나라의 3분의1밖에 안 되는 「네덜란드」인들은 5세기라는 장구한 세월을 물과 싸워 바다를 옥토로 바꾸어 놓았다. 물경2천4백㎞의 제방을 쌓았다. 경부고속도로의 5배 거리다
만약 이 제방이 없으면 국토의40%가 물에 잠긴다. 불모의 저습지는 기름진 목장과 현란한「튜립」밭 또 웅장한 공장지대로 바뀌었다.
「네덜란드」는 「덴마크」버금가는 농산물 수출국인 동시에 기계·전기·직물·초유·「다이어먼드」가공·해운 등에선 세계의 첨단을 가는 공업국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필립스」전기나 「로열·더치·셸」정유가 「네덜란드」에 있다. 인구는 1천3백만명 정도이지만 수출이 3백50억 「달러」, 수입이 3백5억「달러」에 달하고 1인당국민소득은 5천「달러」를 넘는다.
「네덜란드」는 농업과 공업이 이상적으로 고루 발달된 선진부국이다 .물가상승률은 연6%정도여서 「길더」화는 EEC(구주공동시장)에서도 항상 강세를 자랑하고 있으며 대담한 자본구역의 개방정책을 쓰고 있다.
『국토의 절반이 해면 밑에 있는 인간생존 최악의 조건에서 우리가 살아남은 근본적인 이유는 지혜롭고도 끈질긴 대를 이은 투쟁의 결과입니다 적어도 이 투쟁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활입니다』-.

<대지주 꿈 안고 참여>
간척개발공사관리 「린덴베르흐」의 설명은 1천4백60평방㎞의 광막한 벌판이 해면보다 4.5m나 낮게 펼쳐진 모습을 보지 않고는 도무지 실감되지 않았다. 총 3천여 평방㎞에 이르는 북부 「조이데르제」호를 옥토로 뒤바꾼 제방 옆에는 집어삼킬 듯 물길이 넘실대고 있다. 「네덜란드」는 남부에 「유럽」대륙의 젖줄기인 「라인」「뮈즈」「스켈트」3대 강이 「델터」를 형성, 홍수가 휩쓸었으며 북부에 「로마1서」가「프레보」라고 부른 「조이데르제」만이「암스테르담」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북해의 험악한 해일이 넘실대는 마의 땅이었다 파고에 따라 넓이가 불었다 줄었다하는 불모지였다
인구가 늘어가고 경작지가 부족한데도 농토는 늘지 않았다 농토가 항상 습했다. 다만 해면보다 높은 땅만이 마를 뿐이었다. 「네덜란드」인은 이 벽을 지혜로 극복했다 그 유명한 풍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종래 인간이 퍼내야 했던 물을 풍력으로 해결했던 것이다. 유난히 바람이 많은 이 나라에 풍차는 계속 돌아 해면 밑 농토의 물을 퍼내 땅을 말려주었다 풍차가 「펌프」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자 호수의 물을 퍼내자는 논의가 나왔다. 당시 「암스테르담」악마는 북부 「벰스테르」호였다. 바람과 비만 오면 시내로 범람했다 깊이 3m인 이 호수 물을 퍼내고 말리는데는 「암스테르담」상인들이 자금을 완전히 부담했다 이 호수는 1612년에 70평방㎞의 옥토로 변했다. 17세기에 완성된 간척지는 이밖에도 5개나 됐다 .대규모 간척사업이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모두가 소지주가 되기 위해 자진해서 사업에 참여했다』고 당시 토지대장은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은 인간의식구조의 변모와 함께 간척사업을 촉진시켰다.
「조이데르게」호의 물을 뽑아 땅을 만드는 것은 이민족의 숙원이었다.1667년에 「헨드릭·스테빈」이 계획한 이래 2백60년간 수많은 천재들이 구상해 왔다. 이 계획은 한 무명의「엔지니어」「코르넬리·레리」에 의해 1893년에야 완성되었다. 동서 32.5㎞, 남북 l백20여㎞(3백리)인 광대한 호를 어떻게 땅으로 변모시킬 것인가? 이것이 성공하면 국토의 10%인 3천 평방k㎜ 불어나 완전히 지도를 바꾸게 되는 것이다 「레리」는 「암스테르담」의 가난한 종묘상의 아들로 1854년에 태어났다. 부모들이 목사를 희망했지만 「델프트」의 기술학교에서 수준측량법을 배워 21세 때부터 수문 설계를 했다.
그는 탁월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실직했다가 「조이데르제」협회의 거의 무보수로 들어간 것이 「네덜란드」간척사업의 할아버지』가 된 발단이었다. 1893년 그는 이른바 「레리」안을 발표했다

<무명 엔지니어의 집념>
이론이 전혀 없는 간단한 래리」안은 오랫동안 묵살 당했다가 그 자신이 수로상이 된 l919년에야 채택되어 「댐」건설은 l927년에 착공했다. 동시에 호입구 남서부 2백 평방㎞의 「비링게르」간척사업도 시작했다. 3년 만인 1930년이 간척사업이 끝났고 그 2년 후인 32년에 「댐」이 완성되었다. 2차 대전 때 「히틀러」가 댐을 폭격하겠다고 선언하자「네덜란드」는 손을 들었다고 한다. 민족의 피땀으로 얼룩진 위대한 유산인 댐을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해면에서 높이 7.5m이며 l5개의 수문이 있는 이 댐은 온전했다.
그러나「나치 군은 45변4윌 연합군에 쫓기면서 「비링게르」의 제방을 폭파 1년 후에야 보수하는 곤란을 겪기도 했다.
「린덴베르흐」는 동부「폴리블란드」제방에 건설중인 1백38m높이의 TV탑 위로 우리취재 팀을 안내했다. 북으로는 만이 호수가 된 「아이셀」이 바다처럼 펼쳐져 수많은 갈매기들이 날고 있었다 .동남쪽으로는 「레리의 이름을 딴 간척지 내 최대도시 「렐리스타트」가 한창 건설 중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바라보아도 바다가 육지로 변한 것 같지 않았고 더구나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졌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다만 호수의 수면이 벌써 2만여명이 입주한 「렐리스타트」보다 4.5m나 더 높다는 사실, 그리고 이제는 운 하위에 쭉 뻗어 또 건설할 고속도로망이 인간능력의 위대성을 실감시킬 뿐이었다. <글 : 주섭일 특파원·사진 이창성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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