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때 한국작가들의 자세|한국에 유학 온 일 학도|석사논문서 심층분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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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일본의 한 학도가 한국문학에 대한 끈질긴 집념을 불태운 끝에 일제말의 한국문학을 다룬 논문으로 경희대 대학원에서 국문학 석사학위를 획득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상황과 문학자의 자세』(부제-일제말기 한국문학의 경우)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특히 일제식민지정책이 한국문학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그러한 상황 속에서의 한국문학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를 치밀하게 분석한 무게 있는 논문으로 평가받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사에구사·도시가쓰」씨(삼기수승·36). 그는 경도대 물리학과를 거쳐 65년 동 대학원에서 물리학 석사학위를 받은 과학도로 약5년 동안 대학과·고등학교에서 물리학 강의를 했었다. 그가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60년대 후반 일역된 한국소설을 읽으면서부터였는데 한국문학의 진수에 접근하기 위해 한국어를 체득, 혼자서 한글을 깨우친 노력가이기도하다. 이때부터 그는 전공인 물리학을 젖혀놓고 한국에서 본격적인 한국문학을 연구하기로 결심하고 한국 유학의 길을 찾았다.
유학의 꿈이 실현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인 74년 4월. 경희대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다행히 그의 뜻을 가상히 여긴 황순원·조병화·서정범 등 문인교수의 적극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방학 때면 일본으로 다시 돌아가 다음학기의 학비를 버는 등 어려운 한국유학생활 끝에 졸업기를 맞으면서 학위논문의 주제로 고심하던 중『과연 한국문학에 있어서 일본이란 무엇인가』에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작년5월 논문집필에 착수한 그는 6개월만인 10월이 돼서야 완성했다. 2백자 원고지 총6백여장으로 참고문헌만 약 2백권에 달하는 역작이다.
3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이 논문은 제1장에서는 어두운 시대를 조작한 일본의 지배가 얼마나 가혹하고 지독했는가 하는 일제말의 한국문학에 대한 시대적 배경을, 제2장에서는 이른바 「국민문학」이론의 제창자인 최재서를 대장으로 하여 시대의 고민이 어떻게 해서 문학의 국가주의와 일본주의를 낳았는가를 각각 파헤치고 있다.
한편 제3장에서는 이광수·채만식·이무영 등 소위「친일문학」작품들을 예로 들어 이 무렵 작가들이 대일 협력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이 논문이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은 일제식민지정책의 악랄성을 기정사실화하더라도 외적세계에 맞서는 내적 세계가 확립되지 못한 최재서의 이른바 「국민문학」이 한국문학에 있어서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는가하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오늘날 주어진 상황아래서 삶의 뜻을 찾으려하는 각자에 대한 경고』라는 것이다. 또한 이광수의 경우는 그의 도덕적 자세가 소위 「내선일체」의 신념과 결부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이 자세는 모든 것을 합리화시키는 신념의 기반이 되어있지만 한편 아무데서도 안주를 얻을 수 없는 자아의 소산이라는 것이며 8·15해방이 각 문학자에게 있어서 다시 새로운 시련의 시작을 뜻하는 것이라고 볼 때 채만식은 그것을 작품으로 제시한 작가라는 것이다.
황순원·조병화씨에 의하면 이 논문은 이제까지 이 문제에 대한 국내 논문들이 채 접근하지 못했던 깊은 구석까지를 두루 섭렵하고 있으며 이제까지 발견되지 못했던 자료들이 상당부분 인용됨으로써 앞으로 일제말기의 한국문학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사에구사」씨는 3월 중순께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예정인데 가급적 1년에 두 번쯤 한국에 와서 한국문학을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말했다. <정규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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