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망치는 까마귀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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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수십만 마리의 새떼들이 몰려와 인가를 포위하고 마침내는 사람들을 겁에 질려 질식케 하는 얘기-. 이런 처참한 장면을 그린 「히치코크」감독의 영화 『새』는 한국에서도 상영되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새떼들로 인한 그러한 공포가 일부 농민사이에 현실문제화 하고 있다면 어찌할 것인가. 작일자 본지 1면에 실린 까마귀 떼의 보리밭 습격장면은 확실히 이를 실감케 한다.
산과 들에 살고 있는 조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취해진 금렵조치 때문에 이런 현상이 심심찮게 이곳 저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산림청은 72년8월21일 조수보호정책에 따라 야생오수의 멸종을 막기 위해 3년 동안의 전면적인 수렵금지조치를 취한바 있었다.
예외적으로 제주도에 한해서 연간 4개월의 장끼사냥을 허락했었지만 이는 주로 외국인「헌팅」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였다. 일부 지각없는 사냥꾼들의 남렵 때문에 빚어진 야생오수의 멸종위기를 사전에 막기 위해선 부득이한 조처였다고 하겠다.
밀렵꾼들은 장끼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천연기념물인 백조조차도 잡아 박제표본을 만들어 외국에 밀수출하는 범법행위조차 예사로 저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산란기에도 새들을 잡는가하면 또 폭발물·극약·독약·함정 등 금지된 위험한 방법으로 사냥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급격한 공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엄청난 면의 공장폐수과 도시하수가 흘러들어 새들의 서식처인 하천이 크게 오염돼 수난을 겪고 있는데다 지나친 농약사용과 산림의 남벌 등으로 야조수의 생태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전세계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런 판국에 사냥꾼들의 극성스런 밀렵까지 겹쳤으니 새와 짐승의 보호를 위한 금렵 조치는 시급했던 것이다.
전면 수렵금지조치로 한국의 산야에는 눈에 띄게 새들과 짐승이 번식케 됐지만, 반면 곡식과 농작물에 대한 피해 또한 증대일로에 있다.
그러나 산림청은 75년으로 끝나는 금렵기간을 78년 7월말까지 3년간 더 연장하는 조치를 취했던 것이다. 그 이유로 금렵해제에 대비하여 임업시험장이 실시한 전국 32개소의 오수평균 서식밀도의 조사결과 아직도 전국적으로 새와 짐승들이 적정밀도에 훨씬 미달되고 있고, 새 한 마리가 곡식을 먹는 양보다 해충을 잡아먹는 방제역할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 했다.
다만 제주도외에 거제·안면·남해의 3개 섬을 유료수렵장으로 추가하고, 또 벼가 여무는 가을 60일 동안만은 참새를 공기총으로 잡아도 좋다는 예외를 인정하긴 했었다.
그러나 야생오수는 이제 놀라운 속도로 늘어나 곳곳에서 농사를 결딴내는 사태를 빚고 있으니 이를 어찌 그대로 방관만 할 수 있겠는가.
그 예로 충남의 금산·부여, 충북의 괴산 등 인삼주산단지 일대에선 늘어난 꿩떼로 인해 인삼의 피해가 막심하다는 안타까운 소식이다. 추수 전까지는 밭곡식을 해치던 꿩들이 추수가 끝난 뒤엔 인삼밭으로 떼지어 몰려와 4∼5년씩 애써 기른 인삼꼭지를 쪼아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또 강원도나 경북의 일부지역엔 멧돼지와 노루 등이 농작물을 해치는가 하면, 거의 전국적으로 꿩·참새들이 곡식을 망쳐 이룰 좇느라 농민들이 큰 골탕을 먹고있다는 것이다.
생태계보존·자연애호·야생조수류의 보호도 필요하나 이젠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니 야생조수로 인한 피해를 줄이는 조치도 마땅히 강구해야할 계제에 이른 것 같다. 수렵구역·수렵금지기간·수렵조수의 종류·포획물의 수량 등에 대한 제한을 대폭 완화해야 하겠다.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제정의 목적과 농작물 보호가 양립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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