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유화 기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미국의 「밴스」국무장관이 중동6개국을 순방 중에 있으므로 이번에야말로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의 조건이 성숙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중동평화의 유일한 길은 중도적인 온건주의와 타협적인 공존사상이다. 모든 관계국들이 『우리편이 살기 위해선 상대방을 절멸시켜야 한다』는 흑백논리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아랍」「이스라엘」정치풍토의 상대적인 유연화 경향은 평화협상의 전도를 밝게 해 주는 청신호라 할 수 있다. 「라빈」시대의 「이스라엘」은 분명 「벤·구리온」-「모세·다얀」-「골다·메이어」시대의 강경한 주전론에서 서서히 탈피하고 있다.
시민들 사이에도 「팔레스타인」난민문제의 해결 없이는 중동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견해가 점차 대두되고 있는 듯 하다.
한편 이와 발맞추듯 비슷한 유화적 분위기가 「아랍」진영에도 조성되어 왔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노력이 주효한 결과 「이집트」「시리아」「요르단」이 분원을 씻고 대「이스라엘」타협노선으로 뜻을 모은 것이다.
「워싱턴」과 「리야드」가 중도타협의 공동산파역으로 나서기로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편애하는 나머지 「아랍」의 석유를 놓치고 싶진 않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역시 강경 주전론을 방임함으로써 초래될 「아랍」세계의 황폐와 좌경화는 원하지 않는 바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 OPEC총회 때 석유값을 5%만 소폭 인상하여 미국의 비위를 맞추었고, 미국은 그 대가로 「이스라엘」의 유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어서 「시리아」의 「아사드」대통령으로 하여금 지난날의 반미노선에서 탈피하여 온건·좌경노선으로 전환, 「레바논」내란에서의 좌익 PLO의 승리를 저지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레바논」내란의 우경적 평정과 「시리아」의 온건파는 「시리아」「이집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4개국에 의한 「아랍」온건주류파의 형성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다시 PLO의 고립화와 약화를 불러왔다. 아직도 「리비아」와 「알제리」가 남았다고는 하지만, 이들만 가지고는 PLO가 계속 강경 주전론을 밀고 나갈 승산은 없다. 그래서 PLO로서는 불가불 『「이스라엘」전 영토의 탈환』이라는 종래의 극한적인 꿈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아랍」주요국과 PLO 주류파까지가 『「이스라엘」의 존재인정』을 약속하고 나오기만 한다면 「이스라엘」로서도 더 이상 「아랍」측의 최소한의 대의를 묵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아랍」측의 「최소한의 대의」란 「이스라엘」이 67년 6일 전쟁 때 빼앗아간 고토를 반환하라는 것이다.
양쪽이 그런 식으로 상대방의 「최소한의 대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뜻을 굳힌다면 「제네바」협상의 길은 일단 틔는 셈이다.
그러나 PLO가 과연 대「팔레스타인」의 꿈을 포기하고, 「요르단」강 서안의 「미니· 팔레스타인」국가수립에 만족할 것인가, 또 「이스라엘」내의 뿌리깊은 국수주의세력이 과연 PLO의 협상참가권을 용인하려 할 것인가.
문제는 결국 5월 총선을 앞둔 「이스라엘」온건파가 계속 안정정권으로 집권할 수 있느냐, 그리고 숱한 사회문제를 안고 있는 「아랍」온건파가 얼마나 각자의 내정 건실화에 성공할 수 있느냐 하는 데에 달려있다.
이제 중동의 평화는 장기적으로 볼 때 각국에 있어서의 합리주의적 정치세력의 육성문제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이게 되었음을 무시할 수 없겠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