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전문가들이 말하는 건설의 방향과 문제점|권태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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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행정수도건설에 대한 결단은 정치·경제·사회의 각 부면, 그리고 각계 각층에 던져진 파문이 크다.
서울의 인구과밀과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문제는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고. 따라서 서울시나 정부의 힘만으로써는 충분한 대응책을 강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이런 오래 전부터의 큰 숙제를 생각하면「임시행정수도」구상이 발표된 차제에 우리는 차분히 서울의 인구과밀문제의 맥락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30년 동안에 꾸준히, 그리고 엄청난 증가율로 계속되어 온 서울로의 인구집중은 한국 전체의 도시화 현상의 한 단면이다. 한 20년 전만 하더라도 농촌 쪽에 전국인구의 70%가 살던 터였는데 이제는 한국인의 과반수가 도시에 살게 되었고, 아주 온건한 추계로도 앞으로 20여 년 후에는 도시 쪽에 전 인구의 75%가 살게 되리라고 한다. 서울은 이런 엄청난 도시화 과정에 있어서 그 흡수·유입의 정점이다.
이처럼 큰 도시화의 물결에 비추어 볼 때 서울을 위시한 한국의 모든 도시들은 그 내부구조의 면에서나 상호간의 관계 및 위치 등에 있어서 전근대적이고 파행적이다. 그 동안 또 국토의 분단이 전국적인 도시체계를 두 동강이 나게 함으로써 도시화를 통한 국토공간조직의 형성에도 불균형이 초래되었다. 다시 말해서 국토분단이라는 역사적 불운 때문에「서울」은 나라의 한쪽 구석에 있게 되었고, 그래서 그 힘을 주축으로 한 국가의 경제·사회·문화의 발전은 국토의 한쪽 구석에만 편재하게 되었다.
이번에 발표된「행정수도」구상은 위와 같은 국토공간 조직의 파행성과 편재 경향을 시정하기 위한 제일보라고 이해되어야 하고, 또 그러한 거시적인 전망을 가지고 계획·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행정수도」의 위치도 이런 전국적 발전파급효과를 고려해서 계획되어야 할 것이고, 그 개발과정에 투입되는 비용과 그로부터 기대되는 편익에 대한 평가도 위와 같이 거시적이고 장기적인 견지에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오늘과 같은 사회·경제 조직과 교통통신시설 망을 가진 상황아래서 중앙정부의 행정관리기능을 새로운 자리로 옮기는 것은 5백년 전 또는 20여 년 전에 생각할 수도 있던「천도」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것은「서울이 가는 것」이 아니고 서울의 중요한 어떤 기능이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의 인구증감에 미치는 영향도 단기적으로 눈에 띄는 차를 기대할 것이 아니고,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은 국토발전의 균형화를 통해서 장기적으로 성취되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서울의 인구증가율이 다소 둔화될 것이기는 하지만 서울은 지금의 인구규모를 위해서도 그 내부 구조개편을 위한 과제가 엄청나다. 따라서 서울에 관한 한, 새로운「행정수도」의 건설은 그 도시기능에 대한「충격」이 되리라고 하기보다는 서울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정부에 대한「근접의식」에 대한 충격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서울과 같은 대도시는 그 기능이 복합적인 곳이고, 또 그래서 눈덩어리가 굴러서 커지듯이 성장해 왔다.
정치·경제·행정과 문화활동 등 이 한데 얽혀 서로 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도시와 지역들보다 훨씬 빠르게 자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두들 서울서 살기를 원한다. 서울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복합기능들 중에서도 정치·행정의 전국적 중추기능이 서울의 다른 기능들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이런 정치·행정 중추기관들이 근처에 있어서 그들과 자주 접촉을 해야 사회의 다른 활동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그러나 대국적이고 장기적인 국토의 균형 있는 발전이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정치·행정기관에의 지리적 근접이 사회의 다른 모든 활동의 성패를 좌우하는 현상이 교정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에 공 표된「행정수도」구상을 구체적으로 계획하는 과정에서는 중앙행정기관들이 서울의 통근권을 벗어남으로써 서울 사람들이 그 기관들에 대한 대인 적 접촉을 할 수 없게 되어도 모든 사회·경제 활동은 어렵지 않게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조치들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제도적 조치는 지금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새로 건설될 행정수도지역을 또 하나의 서울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운 행정수도는 명실공히 전 국토에 대해서 중립적이고 고른 발전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행정수도」는 이런 큰 지역발전파급효과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필자=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시계획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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