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 무엇이 문제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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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민간투자 많아야>
새 행정수도의 건설, 이전은 그것에 따르는 막대한 경비와 새 수도가 서울과의 보완적 기능을 다해야 한다는 2가지 큰 문제가 따른다. 아직 새 행정수도의 구체적인 건설규모가 밝혀지지 않았으므로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지는 어림할 수가 없다.
그러나 새 수도는 상당히 여유 있게 틀을 잡고 도로·체신·상하수도·공원·교육기관 등을 두루 갖춰야 할 것이다. 기존 도시를 활용할 수도 있으나 전면적인 손질을 가해야 할 것이므로 비용 면에선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행정수도가 이전되면 상당한 인구가 뒤따라 가야 할 것이다. 우선 약 4만∼5만 명의 중앙공무원과 그 가족, 이들을 위한 교육기관과 공공시설 일부, 또 필수적인 상업·산업시설까지 합치면 20만∼30만 명의 인구는 금방 들어찰 것이다. 따라서 공공투자도 막대하거니와 민간투자는 이보다 더 많아야 할 것이다.
인구 20만 규모의 반 월시 개발에 드는 비용을 건설부에선 대개 4천9백억 원으로 잡고 이중 1천2백억 원은 정부예산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수도건설의 경우엔 같은 인구라도 비용은 2배 이상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공업지구와 수도를 새로 꾸미는 비용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반 월에 드는 비용으로 새 수도의 건설비를 유추해 보면 2조원 가량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2조원이면 우리나라 예산의 3분의2가 넘는 천문학적 숫자다.
새 행정수도가 단시일 안에 건설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추진되리라는 전망도 바로 이런 천문학적 비용에 근거를 둔 것이다.
현재의 재정형편으론 이런 엄청난 비용을 따로 떼어 내기는 힘들 것이다.

<외국의 예 검토를>
그러나 자주국방이 일단 81년께 엔 한고비를 넘기게 되므로 5년 시한법인 방위세를 어떤 형태로든 존속시켜 보완한다면 재원마련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음 문제는 새 행정수도의 기능이다. 가장 대표적인 임시행정수도라고 할 수 있는 서독의 「본」이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 것을 알아보면 많은 시사가 될 것이다. 「본」은 임시행정수도로서 훌륭히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매우 성공적인「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서독의「본」은 행정수도이나 금융경제의 중심지는「프랑크푸르트」, 무역중심지는「함부르크」, 법원과 검찰중심지는「슈투트가르트」이고 각 도시가 서로 보완하여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기업들도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지만 수도와 떨어져 있다 하여 큰 불편은 없다. 심지어 서독 중앙은행도「본」아닌「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서독에선「본」에의 인구집중이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모든 민원이나 서류가 전화나 통신으로 해결되고 주 정부중심으로 행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있는 곳에 몰려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서독이「프랑스」와는 달리 두드러지게 큰 도시가 형성되지 않고 비슷한 도시들이 균형 있게 발전하는 것은 독일의 전통적인 지방분권주의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독의「본」은 인구가 30만 명이고「프랑크푸르트」는 80만 명, 「함부르크」는 약 2백만 명이다. 어느 나라에서 하나의 도시가 너무 월등히 비대하면 다른 도시의 활력이 준다. 경제사회의 중추관리기능이 한 도시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미묘한 보완관계>
따라서 각 도시는 균형해서 발전해야 하는데 미국 동북「메걸로폴리스」에서 학원, 전자의「보스턴」, 「케임브리지」상업·무역, 정보산업의「뉴요크」, 정치의「워싱턴」이 서로 특색을 지니면서 보완적인 발전을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앞으로 건설, 이전될 새 수도와 이미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서울과의 보완관계가 문제다.
새 수도를 건설한다고 해서 막대한 투자를 해 놓은 서울을 유휴 화 할 순 없다. 그것은 자원의 낭비다. 그러나 서울의 알맹이인 수도의 기능이 빠져나가고도 서울이 현재와 같은 경제력과 활력을 가질지는 의문이다. 서울은 생산과 분산의 중축 기능·정부기관의 기능·정보산업기능·교육연구기관의 기능이 합쳐져 오늘날의 비 대를 낳았다고 볼 수 있다. 교육·취직·금융·상업·문화정보 등 모든 면에서 유리하게 되어 있다. 이 기능은 수도의 이전과 더불어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강력한 중앙집권제아래선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새 수도도 여간 세심한 주의를 하지 않으면 현재 서울이 비대해진 것과 꼭 마찬가지의 이유로 비대해질 가능성이 매우 많다.
중앙정부의 막강한 권한이 이양·분산되지 않는 한 어차피 인구가 몰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면 서울의 인구는 다소 줄어도 수도인구의 비 대는 여전하다는 결과를 낳을지 모른다.

<자원배분이 문제>
새 수도의 건설, 이전은 이밖에도 건설 후보지 주변에 대한 땅값 앙등, 국민들의 심리적 불안 등의 문제도 파생시킬 것이다. 휴전선에 극히 가까운 7백만 명의 서울시민이 수도가 남쪽으로 떠나 버린 뒤에 계속 같은 안도감으로 살 수 있을지도 정말 심각하게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새 수도건설로 인하여 서울의 기능이 죽거나 유휴 화된다면 이것도 투자효율 면이나 자원배분 면에서 적지 않은 문제가 될 것이다. <최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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