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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관리의 틀과 사람, 의식을 확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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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연구위원

지난해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에 이은 세월호 침몰로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해 온 나라가 침울해하고 있다. 그간 역대 정부는 자연재해나 대형사고 이후 제도 개선과 책임자 처벌을 한결같이 천명해 왔으나 우왕좌왕, 늑장대응, 책임 미루기와 같은 고질병은 이번에도 그대로다. 더구나 아비규환 속에 승객 구조는 뒷전이고 먼저 탈출한 선장이나 선원들의 행동에서 책임감이나 직업윤리를 운운하는 것조차 부질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실종자들은 어둡고 차가운 바닷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다고 믿고 싶다. 우리 사회는 모든 역량을 투입해 단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도 서로 네 탓이라며 생채기를 내기보다 우리 모두 또 다른 세월호의 선장은 아닌지 자성(自省)해야 할 때다. 지난 수년간 재난 관련 전문가들은 가칭 ‘국가위기관리기본법’ 제정, 재난조직 일원화, 전문인력 양성 그리고 비상시 행동요령의 반복 훈련 등을 주장해 왔다. 세월호의 비극을 맞아 다시 한번 향후 국가재난관리체계의 발전 방향을 가다듬어 보자.

 우선,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 가칭 ‘국가위기관리부(처)’를 신설해야 한다. 이는 지금의 재난, 민방위, 비상대비조직을 하나로 통합·재편성하고 시·도 단위에 지청(부)을 설치하는 방안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업무총괄조정, 관련기관 협력(MACC), 자원관리 및 동원, 그리고 사고지휘통제 일원화 등이 이뤄져야 이 조직이 강력한 컨트롤 타워의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이런 전담기관에서 장기간 근무를 해야 담당 공무원들의 전문성도 함양시킬 수 있다.

 우선 지금의 안전행정부는 행정전담 조직으로, 소방 기능은 ‘소방청’으로 독립시켜 운영시킬 필요가 있다. 우리는 재난 현장의 현실을 무시하고 장관이 장관을 통제하도록 하는 지금의 체제가 어떤 문제점을 야기하는지 이번 사태의 초기 대응 혼란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둘째, 재난 전문 인력 양성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전문직업인은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 자기 업무에 대한 책임성, 그리고 유기적인 단체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마추어와 구분된다”고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요건을 갖춘 재난 전문 인력은 태부족이다. 이는 국가나 대학에 체계적인 중장기 교육프로그램이 많지 않고, 재난에 대한 관심도 소홀한 결과로 보인다. 더구나 재난부서는 공무원 사회에서 기피 1순위이고, 보직 순환주기도 1년 남짓으로 빈번하기 때문에 전문가 육성은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담당자 직무교육(OJT) 강화는 물론 대학에 재난 학위과정을 신설하고, 소정의 국가자격시험에 합격한 인력에 대해 공직사회나 기업체에 취업을 알선해야 한다. 그리고 재난 분야 근무자는 군·경찰·교사들의 격오지 근무수당처럼 특수수당이나 직무급 신설과 같은 인센티브를 주어 유능한 인재들이 모여들게 해야 한다.

 셋째, 재난 대비 훈련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지금과 같은 실무자만 참여하는 훈련이나 실제훈련이 아닌 도상 훈련, 그리고 보여주기식 훈련으로는 안 된다. 이런 식이라면 위기 때 조건반사적 대응을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고기를 구하는 거나 다름없다. 앞으로는 재난의 이해당사자인 민·관·군이 함께 비상시 행동요령을 반복 숙달시켜 체득하는(learning by doing) 훈련체제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또한 대통령이나 장관부터 솔선수범해 지진대피 훈련 시 책상 밑에 쪼그리고 앉아 대피하는 모습을 당연시해야 한다. 그래야 훈련이 활성화되고 성과도 높아질 수 있다. 재난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부실대응 고질병은 우리 모두가 자신의 위치에 맞는 정직한 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결과임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넷째, 모든 국가구성원이 원칙과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효율적인 재난관리는 정부의 정책 수립과 법 집행력, 관료의 책임성과 업무 투명성, 정치권의 법률 제정과 국정 조사, 그리고 국민의 지지 획득 등이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가능하다. 이를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원칙과 기본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긴급안전점검을 거부하거나 기피할 경우, 또 강제대피명령에 따르지 않는 개인이나 법인은 법대로 벌칙을 부과해야 한다. 또한 공무원 사회는 전문직업인으로서 직업윤리와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정치권도 생색내기용 사고현장 방문보다 가칭 ‘국가위기관리기본법’ 제정이나 재난안전 관련법, 그리고 지방자치법 개정 같은 본연의 임무를 서둘러야 한다. 국민도 정부의 책무만 요구하지 말고 스스로 보호받을 준비를 해야 안전 불감증이란 단어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식 땜질처방이라는 후진적 재난관리 패러다임을 환골탈태시켜야 한다. 온 국민이 재난안전이라는 가치 우산(value umbrella)을 함께 쓰도록 해야 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과거를 잊은 민족은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고 했다.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