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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에 놀란 유럽, 몰도바 구애 작전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유럽과 미국이 서부 우크라이나와 루마니아 사이에 위치한 인구 400만명의 작은 나라 몰도바 끌어안기에 나섰다. 제2의 우크라이나 사태가 몰도바에서 재연될 우려가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처럼 몰도바의 자치공화국 트란스니스트리아를 다음 목표로 노리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27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28일부터 모든 몰도바 국민들은 생체 인식 여권만 소지하면 유럽의 솅겐존(Schengen Zone)을 비자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아일랜드와 영국을 제외한 모든 유럽연합 가입국과 유럽연합 비가입국인 아이슬란드·노르웨이·스위스 등 26개국을 무비자로 왕래할 수 있게 허가했다.

EC는 이번 조치의 배경에 대해 “몰도바가 내무부 혁신과 국경 경찰의 현대화, 평등과 인권을 보장하는 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더 큰 속내는 친 러시아 주민들의 분리독립 운동을 차단하고 옛 소련권 국가를 끌어들여 ‘신 러시아 제국’을 건설하려는 푸틴의 야망에 제동을 걸기 위한 것이다.

유럽연합 가입을 준비하면서 러시아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해온 몰도바 정부는 반색했다. 친 유럽 성향의 유리 랸케 몰도바 총리는 “유럽연합의 무비자 여행 허용은 트란스니스트리아와의 냉전을 해결할 최고의 희망”이라며 “이번 조치로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들에게도 몰도바는 더욱 매력적인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친러 성향이 강한 트란스니스트리아는 인구 51만명의 소국이며 주민의 30%는 러시아계다. 1990년 독립을 선언했으며 92년 몰도바와 전쟁을 벌인 후 러시아 중재로 자치권을 얻었지만 국제사회로부터 독립국 인정은 받지 못한 상태다. 현재 러시아군 14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인터내셔널뉴욕타임스는 25일 “푸틴이 몰도바를 제2의 우크라이나로 만들기 위해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잠입자와 앞잡이들을 내세워 ‘가면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는 현지 주민들의 우려를 전했다. 가면을 쓴 것처럼 겉으로는 외교적 해결을 외치면서 자경대를 빙자한 러시아군을 몰래 파견하고 친러 주민들을 부추켜 크림반도를 합병한 전철을 다시 밟을 것이란 불안감이다.

실제로 지난달 18일 미하일 부를라 트란스니스트리아 의회 의장은 러시아 의회에 서한을 보내 합병을 재검토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06년 주민투표에서 트란스니스트리아 주민 97% 이상이 러시아 합병에 찬성했지만 러시아 정부가 이를 수용하지 않았던 걸 재고해 달라는 읍소였다. 러시아는 당시와 달리 이번엔 매우 적극적이다.

러시아는 몰도바의 유럽연합 가입을 막는 동시에 트란스니스트리아를 합병하기 위해 조금씩 목줄을 죄고 있다. 몰도바의 중요한 수입원인 와인수출에 제재를 가한 데 이어 러시아산 천연가스 수출도 중단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 군대는 몰도바의 수 차례 요구를 묵살한 채 철수하지 않고 있다.

니콜라예 티모프티 몰도바 대통령은 25일 자유유럽방송(RFE/RL)과의 인터뷰에서 “1992년부터 러시아 군대가 우리 영토, 트란스니스트리아에 주둔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의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러시아 군대가 조속히 철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일 몰도바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했다면 한층 더 강화된 안보태세를 갖출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나토와 유럽연합 가입에 대한 서방세계의 지지와 지원을 요청했다.

존 매케인 등 미국 상원의원 4명은 지난 17일 몰도바를 방문해 “유럽연합 가입 신청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유리 랸케 총리를 만나 몰도바의 에너지 안보와 미국의 투자 계획 등을 논의했다. 미 국무부는 이에 앞서 지난달 말 “몰도바의 미래가 독립적이고 유럽화하는 것을 지지한다”며 국경 경비강화 자금으로 1억달러를 지원키로 약속했다.

이정헌 기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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