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新전쟁 문화코드] 7. 마침표 없는 전쟁(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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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신 전쟁은 마침표 없는 전쟁이다. '마약과의 전쟁' '질병과의 전쟁'처럼 '테러와의 전쟁' 역시 도저히 근절할 수 없는 것을 대상으로 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 전쟁은 실제 전쟁이면서도 한편에서는 이미지와 상징으로서의 은유적 전쟁형태를 띤다.

9.11 테러는 수많은 인명을 빼앗아가고 거대한 빌딩을 무너뜨린 공격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은 영화나 연극 같은 이미지의 연출행위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세계무역센터는 미국의 경제력을 상징하는 탑이고 펜타곤은 미국 군사력을 상징하는 오각의 성채로 그려진다.

그 결과 뜻밖에도 테러들이 발신한 미국의 이미지는 왕년의 어글리 아메리칸으로 형해화해가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낡은 이미지가 되고 말았다.

테러 지원국이나 반미와 반전시위를 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박혀 있는 그 이미지도 그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테러들에 의해 꾸준히 발신되는 미국의 이미지와 상징성은 신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인 자신의 의식 속에서도 유효한 그림이 될는지 모른다. 미국의 힘을 세계무역센터의 글로벌 경제나 펜타곤의 막강한 군사력에 두고 있는 정치인이나 시민들의 경우다.

명 칼럼니스트 프리드먼도 "맥도널드 햄버거 체인점이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골드아치 이론을 만들어낸다. 모슬렘 기도를 위해 하루 다섯 번씩 문을 닫기는 하나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이집트에도 레바논과 요르단에도 맥도널드가 있다.

그리고 맥도널드 햄버거가 진출한 이래 이들 사이에서는 한번도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직 전쟁 위험이 있는 나라 이라크와 이란, 그리고 시리아만이 맥도널드 체인이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프리드먼이 보증하고 있는 바로 그 맥도널드의 골드아치가 이라크 전의 반전 .반미 시위자들에게는 제1순위의 표적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최첨단무기로 무장하고 이라크전에서 싸우고 있는 미국 병사들의 이미지가 미국을 상징하는 힘이라고도 할 수 없다.

모래바람과 불타는 유전의 검은 안개 속에서 게릴라의 습격을 받고 허둥대는 미군의 애처로운 모습을 미국의 힘이요, 그 상징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 전쟁에서 진정한 미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계무역센터의 붕괴현장에서 건축가 나오미 울프가 보았던 바로 실종자들의 얼굴 이미지다.

벽에 붙어 있는 그 얼굴 사진들은 놀랍게도 제각기 다른 다양한 피부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밝고 개성이 있고 생동감 있는 표정 뒤에는 자유분방한 생명력이 숨어 있다.

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진짜 이미지, 그리고 미국의 진짜 힘은 결코 테러리스트들이 공격했던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다양한 얼굴들처럼 워싱턴 몰에서 서로 다른 종파의 종교지도자들이 함께 기도를 올리는 인터페이스, 종교가 달라도 가치관을 공유하는 그 강한 힘과 강한 시스템이 바로 미국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테러리스트들은 그것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고 파괴하고 싶었던 것이다.

나오미 울프가 말하는, 혹은 정치학자 조셉 나이가 말하는 미국의 힘은 햄버거의 글로벌 경제력이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의 군사력 같은 하드 파워가 아니라 문화코드에서 나오는 '매력'이라는 소프트 파워에서 나온다.

테러의 위협으로 세계 곳곳에서 바리케이드를 쳐놓은 미국 대사관 앞에 오늘도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행 비자를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그것은 햄버거를 사 먹기 위해 늘어선 행렬도 아니며 미군의 미사일을 피하려고 장사진을 이룬 피란민 행렬도 아니다.

'매력'은 군사력이나 경제력과 달라서 억지로 제압하는 힘이 아니다. 가만 놔둬도 스스로 몰려와 무릎을 꿇는다. 이 매력이라는 폭탄 앞에서 테러들은 헛다리를 짚고 물러설 수밖에 없다.

카타르의 알자지라 위성방송이 빈 라덴의 인터뷰만이 아니라 아랍인들이 미국인들의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는 토론프로도 방송하게 하는 그 힘이다.

비행기를 납치해 인간폭탄으로 쓰기보다는 우리도 그런 비행기를 만들 수 있는 민족이 돼야 한다고 말하는 아랍의 지식인들을 등장시키는 바로 그 힘이다.

9.11 이후 테러의 공격이 미국에 가장 큰 손실을 끼친 것은 만인이 부러워하는 미국의 '매력' 민주주의의 덕목에 중대한 타격을 입혔다는 사실이다.

테러와 싸우기 위해 그들이 이민의 땅에서 오랜 시련과 시행착오로 쌓아올린 인권.관용.자유 다원주의 가치를 스스로 유보하고 제한할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이다.

테러는 무역센터와 펜타곤을 공격할 수는 있어도 미국의 심장부에 있는 디즈니랜드와 같은 세상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어린 아이에게 이끌리는' 성서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평화의 뜰은 결코 때리지 못한다. 그것이 신 전쟁을 맞춤표 없는 전쟁에서 미국과 세계를 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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