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송사리」만 잡는다는 말이 있는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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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여느 장관 같으면 그사이 한두번쯤은 귀에 좋은 말을 했음직도 하련만 그 오랜 세월을 엄포로 일관해 온 법무부장관이다. 「척결하겠다」「엄단하겠다」「뿌리 뽑겠다」「엄중 조처 하겠다」……뜻을 바꾸면 대체로 「잡아넣겠다」는 말이다.
-1월4일 시무식이 끝나기 무섭게 이번에는 공직자 부조리를 족친다고 선전포고를 하시기에 상당히 무서우신 분인 줄 알았는데….(이때 장관은 잔주름 한가닥 없이 선이 고운 동안에 놀란 표정-)을 해도 공무원의 아내들은 마음 졸이며 지내야 합니까.
윤계원씨(42·서울시청 주사 임창석씨 부인)의 첫 질문. 공연스레 두렵다는 표정이다.
『저희가 수사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극히 소수의 길 나쁜 오리입니다. 특히 올해는 제4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1차 연도이기 때문에 그 기초를 다지기 위해 기업의 부조리·밀수·탈세·외화도피 등 경제부조리를 제거하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흔히들 법률은 거미줄과 같아서 파리나 작은 곤충은 걸려들어도 왕벌은 뚫고 달아나게 마련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만큼 제 주변에서 「재수 없이 나만 걸렸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저 역시 신문보도 둥을 통해 「왜 송사리만 잡느냐」는 비만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마치 고의로 또는 외부의 간섭으로 큰 부정을 들추지 앉는 것처럼 나무람을 받곤 하는데 적은 인원으로 엄청난 부정을 쫓다보면 실제로 적발되는 것은 감추어진 것의 극히 일부분밖에 되지 앉을 때가 많다는 고충도 이해해 주십시오. 수사를 하다보면 공소를 유지할 수 있는 증거 면에서 하급 공무원이 걸리는 수가 많은 실정이지요. 지난 연말 몇건의 큰 부정을 적발했읍니다만… 「당국이 그래줘야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매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 격려의 전화를 몇번 받았읍니다.』
-서정쇄신작업이후 다른 관공서는 비교적 나아졌는데 검찰 공무원은 아직도 불친절하다는 말을 듣고 있어요. 『검찰권은 흔히 양면의 날(인)을 가진 검으로 비유됩니다만. 그것이 바르게 쓰이면 정의의 칼이 되고 오용된다면 무서운 흉기로 전락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저는 짬이 있을 때마다 봉사하는 자세를 강조합니다만, 오랜 세월을 두고 쌓여온 습벽 때문인지 저 역시 아직도 일부 직원들이 친절치 못하다는 말을 듣고 있읍니다. 법무부는 그동안 남의 눈의 「티」를 뽑기 전에 내 눈의 「가시」를 제거하자는 뜻으로 살을 깎는·자제 숙정 작업을 벌여 지난해만도 2백22명의 직원을 파면 또는 징계 조처했읍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법」이 양산되고 있는 느낌인데 대충 그 숫자가 얼마쯤 됩니까.
『7백50개가 조금 못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중 약 반수인 3백70개에 처벌 법규가 있읍니다만 외국에 비해 무거운 것은 아니지요. 지난번 보도를 보니 우리나라 배가 미국 연안에서 게(해) 4상자를 잡았다고 해서 약 5억원의 벌금을 문 일이 있더군요. 우리나라 같으면 기만원에서 기습만원의 벌금이면 되는 것이었는데….
원래 선량한 시민이란 법이 없어도 질서를 지키며 이웃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이르는 말 아니겠읍니까. 그들은 법 이전에 사회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규범인 도덕률을 지키고, 이를 위반했을 때는 습관적인 제재를 받기 마련이었는데…. 자꾸만 강제규범이 늘어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현장은 아니지요.』
이 장관은 부정에 대한 물리적인 제재보다는 무엇보다도 부정을 저지르고는 살수 없다는 국민의식이 소산되어야 함을 강조했고, 윤씨는 올해에도 부조리 제거작업 과정에서 요란한 「용두」에 맥빠진 「사미」가 없도록 거듭 거듭 당부했다. <정리=정천감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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