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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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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대통령들은 「제임즈·몬로」를 닮아 자기 이름 밑에다 「독트린」이라는 말을 붙여 외교의 기본노선을 선언하기를 좋아했다. 1947년「트루먼」은 공산화의 위기를 맞은「그리스」와「터키」를 지원하기 위한 4억「달러」짜리 군사원조 보따리를 풀면서 그것을「트루먼·독트린」이라고 불렀다. 「트루먼·독트린」은 그때까지「유럽」에서 지키던 불간섭정책의 포기선언이었다.

<공약축소 위한 「반 독트린」>
1957년 「아이젠하워」는 「나세르」의 혁명운동이 「레바논」과 「요르단」의 안전을 위협하자 해병대를「레바논」에 상륙시키고, 그것을「아이젠하워·독트린」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때 「아이젠하워」는 영국의 「요르단」간섭까지 지원하면서 중동의 공산화 방지를 위해서 모든 지원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케네디」와 「존슨」두 사람은 「독트린」이라는 이름의 외교정책을 남기지 않았다.
69년7월26일 「괌」도에서 발표된 「닉슨·독트린」에서부터 무대는 「아시아」로 옮겨왔다. 「닉슨·독트린」은 「아시아」에서의 공약의 축소를 의미했다.
월남협상을 앞둔 공약축소의 선언이라는 점에서 「닉슨·독트린」은 「트루먼·독트린」과 「아이젠하워·독트린」과는 반대방향의 『반「독트린」』의 성격을 가진 것이었다.
월남전 이후 「아시아」에 등장한 새로운 질서의 요구에 따라 제시된 것이 75년 12월8일 「호놀룰루」에서 발표된 「포드·독트린」이다.
「포드·독트린」은 태평양국가이기도 한 미국은 「아시아」의 긴장완화·분쟁방지·평화유지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할 책임이 있고 세계안정과 미국안보는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공약에 달렸다고 선언했다.

<「한정」된 아주 개입 입장>
이런 선언은 대내적으로는 월남 공산화이후의 고립주의의 대두를 견제하면서 대외적으로는 미국의 「아시아」개입은 신중하고도 한정된 것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었다.
이번에는 「카터」의 차례다. 「카터」는 선거기간 중에 벌써 비공식적으로 「카터·독트린」을 소개했다.
그는 『「카터」의 기적』이라는 그의 전기를 쓴 「하워드·노턴」과「봅·슬로스」에게「카터·독트린」은 미국의 안전보장이 직접 위협을 받지 않는 한 다른 나라의 내정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카터」는 구체적으로 한국의 경우를 지적하여 미국은 이미 한국에 개입해 있기 때문에 북괴가 한국을 침략할 경우 「카터·독트린」이 미국의 개입을 막지는 않는다는 입장 을 시사했다.

<한국·일본은 동일 안보권>
「카터」는 『우리는 한국에 대해서는 의회의 공약·대통령의 공약·국민들의 공약, 그리고 「유엔」의 공약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론은 한국에 대한 공약의 포기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 여기서도 강조된 것이다.
「카터」는 「포드」처럼 『미국은 대서양국가인 동시에 태평양국가다.
「유럽」과 일본의 안보를 위한 미국의 공약은 미국의 안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카터」가 그렇게 중시하는 일본의 안보에 한국의 안정이 긴요하다는 미국의 입장은 지난 69년 「닉슨」-「사또」공동성명이래 수정된바 없다.
「카터」는 미국은 대국이기 때문에 스스로 그런 사실을 과시할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었더라면 「카터·독트린」은 월남과「앙골라」에도 적용했을 것이고 앞으로 「로디지아」에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터」는 한국을 「카터·독트린」에서는 예외로 다루고 있다. 그것은 한국이 일본의 안보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 말고도 한국이 4대강국의 세력관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 특히 중·소 화해의 기미가 보이는 지금 주한미군까지 「카터·독트린」으로 끌어낸다는 것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을 파괴하는 결과를 갖고 온다는 판단의 결과로 보인다.

<「카터·독트린」의 회색지대>
주한미군철수문제에 관해서 대통령후보시절의 「카터」와 당선후의 「카터」의 입장에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다.
「카터·독트린」의 수정은 한국에 국한될 것 같지는 않다. 만약 소련이「하이퐁」에 잠수함기지를 건설하고 「캄란」만의 시설을 빌어 태평양지역의 해·공군이 사용된다면 「인도네시아」와 중동으로 연결되는 일본의 보급선이 위협을 받게된다. 「아프리카」에서도 소련이 「모잠비크」「앙골라」「소말리아」, 그리고「나이지리아」에 해군과 공군의 기지를 제공받으면 희망봉을 이용하는 석유와 다른 자원의 보급로가 소련의 위협 앞에 노출된다.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군병력의 외국개입을 축소하겠다는 「카터·독트린」의 이상주의는 국제정치의 현실과 타협을 강요받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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