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허가 권력 … "규제 많은 부처일수록 민간 재취업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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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는 ‘관피아(관료+마피아)’에 포위된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냈다. 2100여 개의 선사를 대표하는 단체인 해운조합의 경우 1962년 출범 이후 12명의 이사장 가운데 10명이 해양수산부 출신이었다. 해피아(해양수산부+마피아)뿐 아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전직 관료들이 유관 기관에 진출해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 관료제 66년의 한계와 부작용이 드러난 것이다.

 관피아의 힘은 우선 ‘그들만의 네트워크’에서 나온다.

 매년 1만여 명(올해 1만3772명)의 고시생이 500명 안팎을 뽑는 5급 공채 시험, 이른바 행정고시에 도전한다.

 평균 3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폐쇄적 구조 안으로 들어간 이들은 엄격한 기수(期數) 문화를 토대로 ‘배타적 리그’를 형성해 나간다.

 연세대 김종철(법학) 교수는 “고시 중심주의는 기수주의와 파벌주의를 양산할 수밖에 없는 일종의 엘리트 네트워크”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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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비판에 따라 역대 정부는 공직사회 내부에 경쟁의 개념을 불어넣기 위해 ‘개방형 공직자 제도’를 도입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38개 기관 129개의 3급 이상 직위를 민간에 개방하기로 했다. 개방형 직위를 순차적으로 늘려나가겠다는 취지 아래 도입한 제도였으나 개방형 직위는 이후 14년간 30개 정도 늘었다.

 박근혜 정부의 개방형 직위는 170개(2013년)에 불과하며, 그나마 170개 자리 중 민간인이 실제로 임용된 비율은 20.6%에 불과하다. ‘무늬만 개방형’인 셈이다.

 민간에 개방한다고 한 자리의 80%를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는 것은 관료사회의 진입장벽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 행정부만 갖고 있는 특권인 ‘정부입법’도 관료의 파워를 이루는 한 축이다.

 엄격한 삼권분립을 지향하는 미국의 경우 행정부가 법안제출권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19대 국회에서만 정부는 564건의 법률 개정안을 발의해, 262건(46.4%)을 가결했다. 정부가 낸 법안 2건 중 1건은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5%인 의원입법 가결비율(19대 국회 8837건 중 447건)에 비하면 압도적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지만 정부가 개정안을 특정 의원에게 맡겨 처리하는 ‘우회 입법’도 빈번하다.

 여기에 입법부의 견제가 미치지 않는 정부의 고유권한, 즉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을 통해 인허가권을 행사하면서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

 관료의 막강한 파워는 민간기업 또는 유관기관으로의 재취업으로 이어진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12년 “규제와 사업이 많은 부처일수록 민간 재취업이 활발하다”는 결론의 ‘공직임용제도의 폐쇄성과 공직 부패에 관한 실증 분석’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KDI 김재훈 박사는 “규제·사업이 많은 부처일수록 퇴임 후 민간 재취업이 활발하다는 사실은 퇴직공무원을 영입함으로써 얻는 민간의 혜택이 존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런 대한민국의 관료제 효율성이나 투명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차갑다. 세계경제포럼(WEF)이 최근 148개국을 대상으로 2013년 국가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은 전체 경쟁력은 25위였으나 정책결정 투명성(137위)이나 법 체계의 효율성(101위)이 낙제점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관료 조직을 차라리 ‘이익집단’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연세대 이연호(정치학) 교수는 “정부 규모가 작았던 초기엔 관료들이 엘리트로서의 순기능이 더 컸지만, 지금은 고시라는 진입단계의 경쟁만 끝나면 ‘평생 함께 갈 사람’이라고 알아서 위아래로 서로 숙이는 문화가 일상화돼 있다”며 “왕조시대의 과거시험과 비슷한 고시를 통해 고위관료를 충원한 뒤 이들을 애국자로 규정, 독점적 면허와 특권을 부여해온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호·천권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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