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올림픽」첫 금「메달」 획득-양정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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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언제나와 같이 76년 한해에도 한국 「스포츠」계는 숱한 변전과 화제로 점철되었다. 「몬트리올·올림픽」이라는 최대 「이벤트」를 정점으로 한 수많은 대회와 사건의 와중에서 체육인들의 얼굴엔 명암이 오갔으며 나아감과 뒷걸음질, 혹은 옆 걸음질이 교차하기도 했다. 그중에도 변화의 파장이 특별히 컸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들 변신의 주역들을 찾아본다. <편집자주>
올해 한국 「스포츠」계에 가장 큰 파문을 일으킨 것은 뭐니뭐니해도 양정모의 금「메달」 획득이다.
키 1m62㎝의 차돌멩이 같은 양 선수가 「몬트리올·올림픽」에서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의 정상에 올라섬으로써 해방 이후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을 딴 쾌거는 한국「스포츠」 사상 최대의 감격과 경이와 환희의 회오리를 일으킨 것이다.
8월1일 일요일 아침 (한국 시간) 「레슬러 「두꺼비」는 일약 세계의 「스타」로 변신했다.
사실 양정모는 75년 소련 「민스크」에서 열린 세계 선수권 대회 때 동「메달」을 획득, 이미 세계 정상급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 따라서 1년만에 두발짝의 전진을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두 걸음의 확보가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만큼이나 어려우며 양정모가 그 선구자라는 데서 국민들은 가슴 벅찬 갈채를 보냈다.
양의 도약과 함께 승부에 최대 가치를 부여하는 현대 국제 「스포츠」의 조류에 극히 민감한 대한 체육회, 그리고 전 한국 체육계도 덩달아-최소한 대외적으로는 탈바꿈을 한 셈이다.
「올림픽」 광장에 애국가를 울리고 「코리아」가 종합 19위의 자리를 차지하게 했으니 이건 대체 몇 % 성장인가-.
그러나 오늘의 양정모가 세계 최고라는 영예에다 「플러스·알파」가 실현되지 못해 개인적으로 혁명적인 변신을 이루지 못한데 대해 국민들은 아쉬움마저 느끼고 있다.
그들은 「아마추어·스포츠」에 금전적인 포상을 금지시키는 「올림픽」 규정을 원망스러워하기도 했다.
김택수 대한 체육회 회장이 사전에 약속한 것으로 알려진 (후에 와전으로 정정) 「금메달=l억원 상금」이 실현되었을 경우 그것은 가난한 우리의 운동 선수들에게 피를 끓게 하는 충격파가 될 수 도 있으리라는 생각들을 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아마추어」 선수로서 한국 최초의 억대 재산가 (?)가 될 뻔했던 양정모는 체육인 최대의 영예인 훈장 (청룡상)을 받고 소속 직장인 조폐공사에서 과장으로 승급되는 것으로 그쳤고 지금은 모든 것을 잊은 채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정상을 지키기 위해 맹훈련중이다.
그리고 그가 개선 직후 잡다한 TV 「프로」에 출연하며 「팬·레터」(?) 더미에 묻히는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동안 주변에서 열을 올리던 「올림픽」 제패 기념 체육관 건립 추진운동은 벌써부터 용두사미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박군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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