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뽑히는 「바다의 군도」|검찰권 발동을 계기로 본 남해안 「도둑배」 실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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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검찰권을 주축으로 한 경남 도경 수사진. 수산청 합동의 부정 어선 소탕 작전으로 남해안 일대는 해방 후 30년 동안 도사리고 있던 「바다의 부조리」를 도려내는 작업에 진통을 겪고 있다. 단속 첫날 검찰은 저인망어선 덕신호 (2·5t) 선장 김영수씨 (21·창원군 진동면 신기리 425) 등 16명을 구속하고 어선 13척을 몰수, 1백30여명의 양식물 절취범을 수배했다.
경남 도경의 조사로는 현행범으로 구속됐거나 수배된 것을 제외하고도 범법 어선은 3백50여척이나 되고 부정어로 요소가 있는 어선까지 합치면 3만여척이나 될 것이라는 추산이다.
검찰권 발동으로 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의 손이 미치자 충무·장승포·삼천포 등지 남해안 일대의 활선어 수출상들이 수출 물량이 없어 개점 휴업 상태란 진풍경을 보여 이에 가담한 어선이 얼마나 됐던가를 짐작하게 한다.
67년 이후 남의 양식장에 침범했거나 이로 인한 분쟁 건수는 경남도내에서 만도 1천7백여건에 이른다.
60년대 이전만 해도 이들의 수법이 오늘날처럼 몽둥이를 들고 화염병·돌맹이·특수 조명 등을 갖출 만큼 범죄 집단화하지는 않았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돛단배에 정미소의 발동기를 달아 연근해에서 치어·산란기 어족을 잡는 것이 초기의 수법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어획량이 날로 늘어 문제는 달라졌다. 어종이 멸종 단계에 이르게 됐다. 수산당국이 그냥 있을 수 없어 수산업법을 개정, 규제를 강화했다.
연근해 어 자원의 고갈로 「잡는 어업」이 한계점에 달하자 62년부터 정부는 「기르는 어업」으로 수산 정책을 바꾸었다. 이에 따라 남해안 일대에는 철망 없는 대규모 「바다 목장」 (굴·홍합·김·피조개)이 들어서게 됐다.
양식 어획량만 해도 62년 1만8천7백t, 68년 11만3천t, 74년 34만t에 달해 세계 어획고 제7위로 부상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이에 72년 한산만, 거제만 2천1백12ha를 청정 해역으로 지정하는 한편 이 지역 4만2천ha를 수자원 보전지구 「블루벨트」로 지정, 양식 사업에 수산 행정의 역점을 두었다.
문제는 국가 시책에서 제외된 잡는 어업이었다. 돈을 모은 어민들은 선복을 20t이상으로 늘리고 잠수기 어선도 2백73통으로 허가를 받아 그런 대로 조업했으나 허가에서 제외된 소형 어선들은 계속 부정 어선으로 남은 것이다. 소형선이기 때문에 원해로 조업할 수도 없고 연근해 어 장터에는 모두 양식장이 들어서 조업할 곳 마저 잃었다.
이에 바다 곳곳에 깔린 황금 양식물을 견물생심으로 절취하는 사례가 늘어났다.
70년대 초반부터 부정 어선들은 양식장을 침범, 양식물 절취하는 해상 절도로 변했다. 부정 어선의 장비도 쾌속에다 무장까지 갖추어 틈만 있으면 양식장을 침범, 애써 키운 양식물을 훔쳐갔다. 5t급 부정기선형 저인망 어선의 경우 평균 5명이 증선해 피조개 양식장에 침입하면 조업 1시간만에 1백50만원 어치의 양식물을 절취할 수 있게 되었다. 경비원과 어민들의 경계가 강화되자 수법도 차차 강도화, 최근 들어서는 10∼50척씩 짝을 지어 양식 어민들을 위협, 집단으로 양식물을 훔쳐갔다.
단속선이 방파제에 접근하면 이 마을 아낙 30여명과 어린아이 등 50여명이 선착장에 드러누워 지도선의 선착장 정박을 막기도 했다. 이번 단속에서 감시선이 김영성씨 (26)를 검거, 떠나려 하자 주민들은 「로프」에 몸을 감고는 남은 줄을 지도선에 연결해 『같이 죽자』며 반항했다.
이대로 두면 10년 동안 국가 시책으로 육성했던 「기르는 어업」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판이다. <충무=이성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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