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좌 땅값 17억「엥」내놔라"|영주 귀국한 교포 유오장씨 20년째 법정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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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동경「긴자」거리에 있던 시가 17억 원 상당의 금싸라기 땅과 건물을 일본 정부에 의해 강제 철거당한 재일 동포가 영주 귀국 후 일본정부를 상대로 정당한 보상을 요구하며 20년째 의로운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다.
화제의 인물은 일본법원에서 10회, 한국법원에서 6회, 모두 16회를 청구 기각 당하고 2일 대법원에 17회 째 준 재심청구를 낸 튀김장수 유오장씨(68·서울 영등포구 고척동 185의 21). 지금까지 6회나 고국의 법정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판시, 얼핏 승산이 없어 보이는 싸움인데도 유씨는 집념 하나로「시지프스」적 도전을 계속하며『국민이 타국으로부터 자기 재산을 찾아오려는데 우리 법원이 이토록 무관심한가』며 자기 나름의 분개를 털어놓았다.
유씨의 첫 법정투쟁은 57년 동경지방재판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충남 청양군 정산 면에서 보통학교를 졸업, 19세 때 단신 일본에 건너가 기계공으로 갖은 고생 끝에 목돈 5백만「엥」을 쥔 그는 당시 동경도로부터「토지 및 공유 수면 점용 허가」를 얻어 축 지천이던 「긴자」동 4정목 7번지에 양식「방갈로」(대지 44평·건평 24평)를 짓고 한국요리점「코피·숍」을 경영했었다.
또 이「방갈로」부근에 대지 30평·건평 17평의 건물도 소유, 관광유람선을 운행했다고 한다.
그런데 57년 3월 2일 동경도 당국이 이 일대의 환경을 정화하고 축 지천을 메워 고속도로를 건설한다며 인근 건물들을 강제 철거했다.
줄지어 1억 여「엥」(당시 시가)의 전 재산을 잃은 유씨는 동경도 당국이 매립 법 31조에 의거,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당한 보상을 해주기를 기다렸으나 동 경도는 그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유씨 주장) 차일피일 미루다 단돈 3백만「엥」을 철거보상금으로 내 놓았다는 것.
당국의 처사에 분격한 유씨는 이 보상금을 거절하고 동경지방재판소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당시는 일본 정부의 제반 시책이 노골적으로 재일 동포에게 차별대우를 하던 시절.
유씨는 정당한 주장이라고 확신했지만 1, 2, 3심은 모두 유씨의 청구를 기각했고 6회에 걸친 재심청구마저 외면해 버렸다는 것.
패배를 거듭한 그는 62년 11월 5일 고국에 영주귀국하기로 결심, 재판기록일체만을 든 채 가족을 데리고 무일푼으로 돌아왔다. 막노동·튀김장사를 해 가며 겨우 끼니를 때우면서도 『내 재산을 찾겠다』는 집념은 사라질 줄 몰랐다.
얼마만큼의 소송비용을 마련한 유씨는 70년 도에「우시로꾸」주한일본대사를 상대로 서울민사지법에 손해배상청구 및 법률확인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재판부는『주일대사가 외교상 면책특권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 나라의 재판권이 피고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판시, 유씨의 소각하판결을 내렸다. 고법·대법원의 판결도 마찬가지.
그럼에도 그는 법원의 견해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며『정당한 나의 주장을 받아 들이라』고 계속 법조문을 되뇌며 법원문턱을 드나든다.
변호사도 없이 스스로 육법전서를 뒤져 가며 소장을 작성하는 유씨를 보고 법원주변에서는『그의 주장에 대한 법률적 성립을 떠나서 그칠 줄 모르는 집념이 애처롭기만 하다』고 동정하는 표정들이다. <전 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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