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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동에 갈 곳 없는「배움의 의지」|강제 철거되는 성남 근로청소년학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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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의 꿈을 꺾지 말아 주셔요.』- 경기도 성남시 은행동 594 속칭「달나라 별나라」골 산비탈 다해진 천막 속에서 엄동 추위에 손을 불어 가며 공부하던 성남근로청소년학교 학생 5백여 명은 성남시의 천막교실 강제철거 최후 통첩을 받고 겨울만이라도 이곳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별나라」골은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은 단간 방의 불빛이 하늘의 별과 구별하기 힘들다고 이름 붙여진 영세민 동네. 이곳에 청소년학교가 세워진 것은 71년 11월 11일.
연세대 학생 5∼6명이 성남시의 무 취학근로소년을 위해 연대도시문제연구소 후원으로 천막 1개에 학생 60여명을 모아 근로청소년학교로 출발, 만 5년만에 학생이 5백여 명, 천막도 5개로 늘었다.
5년 동안 중학교 2회, 고등학교 1회 모두 7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 이중 50여명이 붕·고등검정고시에 합격했다. 특히 기술교육을 위해 타자 반·주산 반·부기반등을 편성, 주산 1단 이상이 20여명, 타자 2급 이상이 5명이나 된다.
학생들은 성남시내 섬유·전자·봉제·식품 등 1백20여 개의 공장에 다니면서 공장근무시간에 따라 주·야간 반을 편성. 무료 봉사하는 30여명의 대학생강사들에게 중-고등과정을 배워 왔다.
비가 올 때는 낡은 천막이 새어 책상 밑 발 아래에 책을 펴놓고 귀만 가지고 공부를 해 오기도 했다.
지난 8월 태풍「프랜」호가 불어 왔을 때는 천막 2개마저 날아가 버리고 나머지 3개도 찢겨져 바람에 너불거리기 시작했다.
찬바람이 불어닥치자 학생들 사이에서『우리 학교 우리가 짓자』는 움직임이 일어나『1인 10장 벽돌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낮 동안 고된 일을 한 학생들이지만 밤에 3시간의 공부를 마친 뒤 괭이·삽 등으로 비탈을 깎고 가마니에 흙을 퍼 날라 학교부지를 닦고 벽돌을 쌓았다.
학생들의 손바닥은 핏방울이 맺혔고 어깨와 등만은 가마니에 긁혀 목욕조차 할 수 없었다.
이 같은 학생들의 노고를 듣고 주한 독일대사관에서 70만원을, 국회의장 실에서 20만원을 건축희사금으로 학생들에게 전달했다.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쌓기 시작한 벽은 몇 차례나 무너지기도 했다. 보다 못한 학부형들이 학생들을 돕고 나섰다. 부형들은 벽돌을 쌓고 학생들은 나르고 하여 지금의 1백3평 4면 벽이 완성되었다.
10월 말 뜻밖에 성남시에서 시유지의 무허가건물이라는 이유로 철거지시가 내려왔다. 11월 5일 철거반 10여명이 학교에 들이닥치자 학생 1백50여명은 수업도중 뛰어나와 철거반원을 붙잡고 애원, 오히려 철거반원들이 눈시울을 붉히며 돌아갔다는 것.
이때부터 학생들은 내무부장관·경기도지사 등에게 겨울만이라도 나게 해 달라고 진정했으나 11월 29일까지 철거하라고 최후의 통첩이 왔던 것.
「스웨터」공장에 다니면서 고2과정을 다니는 조정종 군(21·성남시 상대원동)은『벽돌 한 장마다 우리들 손끝이 안 닿은 부분이 없다. 저 교실은 우리들의 몸과 같다』면서 교실을 뜯어내면 우리들은 비탈에 나와 앉아 공부해야 한다며 울먹였다.
대학졸업 후 줄곧 청소년학교에 몸담아 온 최규성 교장(32)은『완공 후 성남시에 기증하거나 시로부터 땅을 불하 받는 등 여러 방법을 시에 건의했으나 무조건 철거하라는 명령만 내려왔다』면서『고등공민학교 공납 급도 못내는 영세근로청소년들을 무료로 가르치는 대학생들의 갸륵한 정성을 보아서도 시 당국이 행정 이전에 인간성 회복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문창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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