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관습의 합리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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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물자절약추진본부인 무임소 장관실은 감사원을 통한 물자절약 강화방안과 가정의뢰준칙의 더한 층의 준수방안을 국무회의에 보고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관가와 민간「레벨」에서 자발적인 물자절약운동과 저축·생활간소화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터라 정부당국의 이 같은 태도 천명은 주목할 만한 여운을 남긴다.
경제적인 이유를 떠나서라도 그런 생활태도는 우선 인류사회의 기본적인 덕목을 실천하는 것이다.
수양을 쌓은 사람이라면, 애당초 이른바「낭비」나「사치」적인 생활을 할 까닭이 없지만, 거꾸로 검약과 검 소를 신조로 삼는 사람일수록 수양이 된 사람이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물건을 아껴 쓰고 허례허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인생을 그만큼 겸허하고 진지하게 살아간다는 것을 뜻한다. 매사에 하늘 두려운 줄을 알고,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남과의 사귐에 있어 방자한 태도를 삼가야 한다는 계율은 동서고금을 통해 공통된 덕목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허례허식과 사치의 풍조가 만연하고, 분에 넘치는 소비성향이 기승을 떠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의 도덕적인 기강이 해이해졌음을 뜻하는 것이다.
실상, 오랫동안 동양사회가 퇴영적인 추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것은 다름 아닌 허례허식에 찬 생활관습에 그 원인의 일단이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에 들어와서도 동양사회와 동양인은 합리주의에 약하다는 정평을 받고 있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는, 철학적 장점이 되기는 하지만, 사회의 발전과 가정생활의 보다 합리적이고 능률적인 운영과는 정 반대의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합리성의 준거에 따라 따지는 것을 기피하기가 일쑤고, 순리에 좇아 사리를 따지는 것조차를 도리어 싸우려는 것으로 곡해하거나, 좀스럽다고 소인시하는 것이 동양적 인습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양사에는 서구적인 합리주의나 근대적인 경영이나 시민사회라는 것이 등장하질 못했다. 부의 축적을 청교도적인 근검「모럴」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일도 일찍이 없었다. 때문에 우리네 동양인들은 오늘에 와서도 생활을 조직화하거나 기획하거나 합리화하는데는 무척 서투르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우리 주변에는「되는대로 주의」,「주먹구구방식」, 허례허식이라는 전통사회의 투박한 생활관습들이 온존돼 있다.
일례로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이 생긴지도 벌써 오래 되었으나 우리네 가례풍습은 아직도 요란스럽기만 하다. 청첩장 대신에 이름만 바꾼「편지」라는 것이 돌아다니고, 가정마다 옛날그대로의 허례가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초상집에서의 밤샘 노름과 술대접, 연말연시나 명절 대목의 들뜬 기분과 각종 관례들이 준칙을 비웃고 있는 실정이다.
하기야 일반 국민들이 벼르고 별러서 모처럼의 관혼상제를 한번 훌륭하게 치러 보고 싶어하는 심정이야 알아줄 만도 하다. 또 상당수의 국민은 허례를 하고 싶어도 그럴 만한 여유가 없다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 보다는 역시 생활감각의 비합리성이 더 큰 문제인 것 같다.
가령 신혼부부의 새 살림을 차리는데 무리를 해서라도 꼭 신혼여행을 가야하고, 집채만한 장롱을 새로 사야만 하는가. 마을 공회당에 가족끼리만 모여서 식을 올리고, 결혼신고만 하면 안 된다는 법이 있는가. 산소자리는 반드시 봉 분을 덩그렇게 만들어 놓아야만 자손이 잘 되는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다.
현실적으로도 이제 세상은 서로 머리를 짜서 합리적으로 처신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수 십억 인구가 살아가기 힘들게 돼 버렸지 아니한가.
이 좁은 땅덩이 위에서 인류가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라도 합리성을 결한 관습은 벗어 던지고 보다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서둘러 가져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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