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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임부 『카드』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정부는 인구조절을 위한 정책의 하나로 가임부 「카드」제를 마련, 현재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20세부터 44세까지의 배우자가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이 「카드」제는 아직 그 시행내용이 정해지지 않았지만 2명 이상의 자녀를 두는 가정에 대해서 세금·주택분양 등에서 차등을 둔다는 것과 함께 정책적으로 출산억제를 유도한다는 것이다. 보사부 추계로는 현재 이 「카드」작성 대상자는 약4백82만 명. 앞으로 이 「카드」가 어떻게 활용될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가임 여성 「카드」제에 대한 각계 여성들의 의견을 모아본다.

<침해되는 사생활>
▲김숙향씨(동요작곡가)=인구문제를 이런 발상으로 해서 될 일인가? 도대체 어처구니없다는 생각뿐이다. 만일 이 「카드」가 강제력이 생겨서 또 한가지 불편해지는 구실이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법적이라 해서 이런 사생활을 묶는다는 것은 말이 되는가.
각자가 알아서 해나갈 문제를 예산과 기구를 붙여서 간섭하겠다니 좀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가족계획이라면 서울이고 지방이고 경제적 문제 때문에 아기를 낳기가 어렵게 된 현실이다. 결국 문제는 가난하고 그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처리할 줄 모를 때 어떻게 도움을 주느냐에 있다. 그런 일을 골고루 잘 보살펴주고 편리하게 해주는데 힘을 쏟는 것이 무엇보다 효과적인 방법일 것 같다.

<인간의 도 벗어나>
▲전명숙씨(서울대 인구문제연구소 연구원)=가임여성 「카드」라는 말이 우선 불쾌하다. 물론 인구문제가 정말로 극에 달해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선 어떤 결단적인 조치가 필요한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과연 언뜻 인간의 도를 벗어난 듯한 인상까지 주는 「카드」제가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 그것이 의문이다.
국가정책이 돈과 노력을 들인 만큼 효과를 못 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의미에서 국민에게 불편을 주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카드」가 교육 못 받고 가난한 여성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 그들에게 어떤 제한을 주는 구실만 된다면 이것은 악용이나 마찬가지의 결과를 부르게 될 것이다. 인구문제를 우리국가 전체의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해나가야 할 것인가는 바로 우리의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구제조기 취급>
▲한말숙씨(작가)=우리 나라의 인구문제가 이제 이 정도까지 왔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기분이 안 좋다. 개인 생활이 이런 식으로까지 침범을 당해야 하나 생각하니 어색하고 무섭기까지 하다.
도대체 여자라는 인간이 인구억제정책의 장애처럼 취급을 당해서야 되겠는가? 여자를 인구제조기로만 봐주는 것 같은 인상이다. 여자는 아기만 낳는 동물이란 말인가? 왜 그렇다면 아무데나 가서 아기를 만드는 남자들에게 「카드」를 붙여놓아 아예 불씨를 없애지 않는지 묻고싶다.
인구억제를 해야된다는 것은 현재 우리인류의 심각한 과제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이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본에서 벗어나선 안 된다. 다른 방법의 계몽운동이 얼마든지 있으리라 본다.

<시행에 난제 많아>
▲이요식씨(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처장)=인구폭발 추세로 봐서 우리 나라에도 철저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은 수긍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번 「카드」제는 그 수단방법을 안 가린다는 뜻으로 해석되도록 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 개인의 의견으로는 「카드」제 자체는 괜찮다. 그러나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시행하느냐에 걱정이 앞선다. 이 문제는 개인의 사생활과 관계되는 것인 만큼 첫째로 본인에게 선택하는 기회를 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카드」제는 계몽사업을 전개하는데 있어서의 자료로서만 활용되면서 그것을 토대로 사업을 벌이는데 의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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