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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미래상 뚜렷한 야심가" 레스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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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지미·카터」는 유독 자기에게는 새로운 미국, 지금과는 다른 미국, 보다 나은 미국에 대한 미래상이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고자 했다고 말했다. 『내가 가진 미래상은「봅·딜런」의 표현을 빌면 바쁘게 죽어 가는 미국이 아니라 바쁘게 태어나는 미국에 대한 미래상이다.』(76년 5월28일「오하이오」주에서).「필라델피아」의「자유의 종」앞에서「카터」는 또 2백년 전의 미국을 반성했다.
『「조지·워싱턴」은 노예를 부렸다. 「토머스·제퍼슨」 역시 노예를 소유했다. 그 노예제도 하나 폐지하는데 1백년이 걸렸다.』「카터」생각으로는 미국의 모습이 그렇게 완벽한 것이 아니다. 미국은 아직도 젊은 나이고, 아직도 자라고 있고, 아직도 갈 길이 멀었다고 느꼈다. 그는「포드」는 이런 역사적인 전환기가 요구하는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포드」는 대담하지도 않고 진취적이 아니다. 「포드」는 만사가 타협으로 해결되는 의회의 전형적인 산물이다. 그는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는데 소심하고,「포드」행정부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지 않다.』(75년 4월15일「아칸소』주의「리틀·록」에서)
「카터」는 선거운동 중에 어디를 가든지「카터」와「카터」행정부는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고, 「카터」행정부는 미국 국민들같이 선량할 것이고, 그런 역사적인 사명을 위해서 출마한 자신은『패배할 의향이 없다』고 약속했다. 구체적인 정책을 쟁점으로 하기보다는 「카터」는 자신의 미래상과 도덕관을 강조하여 이번 선거를 독특한 선거로 만들었다.
「카터」는「포드」행정부가 사실상 「닉슨」행정부의 연장임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정부의 질을 낮추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부끄러움의 원천이 아니라 영감의 원천이 돼야 한다.』「포드」가 미래상을 가지지 못한 대통령이라는 점은「카터」자신의 정치적인 선전이 아니었다.

<"죄 많은 세상에 정의를>
「워싱턴·포스트」지의「데이비드·브로더」기자는「포드」를『미래에 대한 확정된 시야를 가지지 못한 사람』이라고 불렀고, 평론가「제임즈·레스턴」은「포드」가「로버트·도울」을 부통령후보로 선정했을 때『미래에 대한 시야를 가지고 있는 자신 있는 사람의 선택은 아니다』라고 탄식했다. 「브로더」와「레스턴」은「카터」는 미래상을 뚜렷이 가지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야심가라고 평했다.
「카터」는「닉슨」의 영광과 몰락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 『민주당은 1968년 사랑과 웃음을 잃은 채 통치하는 사람, 법과 질서를 약속하고는 범죄와 탄압을 선택한 사람에게 패배했다.』(76년 6월1일「로스앤젤레스」에서)「카터」는「워터게이트」로 상처를 입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신의 심정을 신학자「라인하르트·니버」를 인용하여 토로했다.『「니버」는 정치제도의 슬픈 임무의 하나는 죄 많은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겼다.』(74년 5월4일「조지아」주「애던즈」에서)
「카터」는 자신을 숙명론자라고 부른다. 그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대통령에 출마한 자신의 당선을 역사적인 필연성이라도 되는 것 같이 주장했다. 출마선언에서 당선까지의「카터」의 행적을 추적하면 그런 주장자체가 출마초기에 약세에 있던 자신에 대한 일종의 자기최면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카터」는「톨스토이」의『전쟁과 평화』를 읽고 승리를 확신한「나폴레옹」이「러시아」농부들의 조국에 대한 사랑을 과소 평가하여 패배한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전쟁과 평화』의 교훈>
「카터」는『전쟁과 평화』의 교훈을 이렇게 해석했다. 『아무리 위대한 역사적인 사건이라도 지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의 지혜·용기·헌신·분별력·동정·사랑과 같은 힘이 합쳐서 좌우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점이다.
소위『땅콩세력』에서 출발하는「카터」의 선거전략은 대통령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자각과『전쟁과 평화』의 교훈에서 발상 된 것이다.
『땅콩세력』은「피너트·버터」를 보고는 울음을 그치는 어린이들을 말한다.
「카터」는 예비선거 기간 중에「뉴햄프셔」의 작은 학교를 찾아다니면서 어린이들에게 대통령이 무엇인가를 묻고는 집에 돌아가거든 부모들한테「지미·카터」에게 표를 찍도록 『설득』하라고 타이르고 다녔다.
그렇게 해서「카터」는 미국역사상 예비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사람이 됐고, 정당지도자의 지지를 받지 않고도 지명을 받은 후보, 현직 대통령을 패배시킨 여덟 번째의 대통령이 됐다.
「카터」는 월남전과「워터게이트」이후의 국민들의 좌절감을 자기의 미래상으로 끌어올리는데 성공했다.

<"꿈 가진 투사" 자기소개>
정부 내부의 도덕적인 타락을 뿌리뽑고 정직성의 가치를 소생시키겠다는「카터」의 공약은 시기적으로 설득력이 있었다.
「카터」가 국민들에게『꿈을 가진 투사』로 자기소개를 했을 때 모험성이 없고 무미건조한「포드」와 자기를 사람들이 비교해 주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승리를 확신했다.
그러나 그는「토머스·듀이」가「트루먼」한테 당한 1948년의 역전패를 이렇게 명심했다.
『「듀이」는 너무 오랫동안 대통령이 되기나 한 것 같이 행세하고 다닌 결과 국민들은 그가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그를 갈아치운 것이다. 그런 일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76년 6월 26일「밀워키」에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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