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산불 5~9년 이후] 민둥산에 움트는 새 생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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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이 반복된 동해안 일대 산지는 황량하기 짝이 없다. 화마가 할퀴고 간 곳곳마다 새살이 돋는 흔적이 있었지만 원래의 푸름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땅 척박해져 복원 더뎌

7일 오전 9시, 중앙일보 취재팀과 녹색연합 백두대간보전팀은 1996년 대형 산불이 났던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들어섰다. 눈에 띄는 큰 나무가 없었다. 송지호 주변이나 삼포리 쪽은 인공조림한 자작나무가 4~5m 높이로 삐죽삐죽 자랐지만 산의 속살을 감추지는 못했다. 내륙 쪽으로 들어간 오봉리 산등성이는 아예 황토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불이 난 이후 심은 자작나무.소나무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지만 무너져 내리는 흙을 잡아두기에는 힘에 부쳐 보였다. 취재팀이 발길을 옮길 때마다 토사가 줄줄 흘러내렸다. 주민 김동환(69)씨는 "불이 나기 전 이곳은 숲이 우거져 밤에는 무서워 길을 걷지도 못했고, 송이철에는 다들 1000만원 이상씩을 벌어들였지만 지금은 전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취재팀의 눈에 죽은 꿩과 동물의 배설물이 들어왔다. 꿩의 사체는 야생동물에 의해 훼손돼 있었고, 배설물은 고라니의 것이었다. 녹색연합의 정용미 팀장은 "산불지역에 제한적이지만 나무가 자라기 시작하면서 야생동물도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다"면서 "자연의 복원력은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20~30년 돼야 숲 회복"

인근 고성군 토성면 운봉리는 96년과 2000년 두 차례나 산불을 겪었던 곳이다. 뒤편 해발 287m의 운봉산에는 예전엔 산을 뒤덮었을 소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 96년 산불 이후 심은 묘목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기 시작했을 때 다시 산불이 덮치는 바람에 벌거숭이산이 됐다. 3년 전에 소나무 묘목을 심었지만 아직 키가 30㎝ 정도에 불과하다. 두 차례에 걸친 산불로 토양이 알칼리성으로 변한 데다 그나마 있던 양분도 빗물에 씻겨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 마을 김용혁(68)씨는 "20~30년이 지나야 숲이 회복될 텐데, 우리 세대가 살아생전에 보기는 틀린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취재 2팀이 찾은 남쪽의 강릉시 사천면 덕실리.노동리.판교리 일대의 산도 아직 황토색 벌거숭이였다. 이곳에서는 2000년 4월 산불이 났다. 곳곳에 숯덩어리가 된 소나무 밑동이 남아 있다. 새로 조림한 2~3년생 소나무.전나무.잣나무 등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숯검댕 등걸서 새 잎도

취재 3팀이 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 궁촌교회 뒷산과 서능마을 뒷산은 2000년 산불 이후 산수유.상수리 등 활엽수를 심은 곳이다. 나무는 뿌리를 내렸지만 주변은 마치 사막 같은 모습이었다. 토양이 모래흙이어서 진달래.싸리나무는 물론 잡목도 자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삼척시 미로면 하거노리는 2000년에 덮친 화마에도 소나무가 살아남아 따로 조림을 하지 않았던 곳이다. 나무 밑동은 화상(火傷)을 입었지만 잎을 내고 성장을 계속해 지금은 산불이 나기 전과 별 차이가 없다. 벌거숭이 산 한복판에 5년째 숯덩어리처럼 까만 모습을 하고도 푸른 잎과 솔방울을 한껏 매단 리기다소나무는 생명력 그 자체였다. 척박한 땅도 봄을 맞아 꽃망울을 터뜨린 연분홍 진달래와 푸릇푸릇 돋는 새싹을 막지는 못했다.

특별 취재팀

*** 바로잡습니다

일부 지역에 배달된 4월 8일자 1면 '민둥산에 움트는 새 생명' 기사의 지도 가운데 삼척시 미로면(두타산) 산불발생 일자는 2000년 4월 12일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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