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홍의 정치보기] 한나라 黨權변수 서청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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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부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 그는 단순한 사람이다. 한나라당 서청원 전 대표. 속을 못 감춘다. 좋으면 좋은 대로 싫으면 싫은 대로 그대로 쏟아낸다. 보이는 그대로가 그일 뿐이다. 말하는 그대로가 그의 속이다. 움직이는 그대로가 그의 겉이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 김현철 멱살 잡고 꾸중

싸움엔 능하다. 물불 안가린다. 그러나 타협엔 약하다. 받는 거보다 주는 게 많다. 속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에 통째로 잃는 법은 없다. 자신의 진솔함으로 상대의 마음을 산다. 야당총무에게 상석을 양보하는 여당총무였다.

그는 대선 당시 당 대표였다. 그의 그런 기질이 그를 그때 그 자리에 앉혔다. 이회창씨로선 마음 편한 대리인이었다. 꿍꿍이도 복선도 읽히지 않았다.

그는 YS계 출신이다. 11년 전이다. 모두가 김현철의 눈치를 볼 때였다. 아부 아닌 아부를 떨었다. 그러나 그는 현철의 멱살을 잡았다. 그것도 YS자택 2층 복도에서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니가 뭔데 말아먹느냐"고 했다. 그 후 그는 1년 동안 거의 백수 신세였다.

그에겐 악발이란 별명이 있다. 주어진 일은 어떡하든 해낸다. 그가 기자를 할 때였다. 1980년 봄 그는 광주사태를 취재했다. 나가지도 않는 기사 안보내면 그뿐이었다. 모든 전화선이 끊겼다. 그러나 그는 전화를 찾아 헤맸다.

결국 전남 도경국장의 빈집 담을 넘었다. 경찰 전화를 쓰려 했던 거다. 순찰 중인 시민에게 들켜 죽을 뻔했다. "나 기자인디요"라는 가짜 사투리로 위기를 모면했단다.

실은 그도 운동권 출신이다. 그러나 구세대다. 이른바 6.3세대다. 그는 64년 한.일 굴욕외교 반대에 앞장섰다. 중앙대 63학번인 그는 구치소로 잡혀갔다. 4개월간 감방생활을 했다. 감방 안의 18명 중엔 30대 살인자도 있었다.

40대 소도둑도 있었다. 밤이면 무서워 떨어야 했다. 그렇지만 그는 그들과 얘기를 나눴다. 소 훔치는 법도 배웠다. 대신 그는 그들이 몰랐던 세상의 이면을 알려주었다. 그러면서 그는 감방을 평정했다.

감방장이 된 그는 감방 신고식부터 없앴다. 평정의 동력은 주먹이 아니었다. 단순 솔직함이었다. 그것이야말로 그 무엇도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그래서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단다.

그는 지금 당 대표 경선에 나서려 한다. 당권 향배의 결정적 변수다. 이회창 지지세력의 다수를 업고 있다. 이점이자 약점이다. 그러나 족쇄가 채워져 있다.

하나는 대선 패배 책임론이다. 선거 당시 당 대표로서의 책임이다. 또 하나는 약속 불이행이다. 대표 경선 불출마를 약속했던 그다. 그러나 책임과 비난을 피해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그대로 심판받고 싶어 한다. 최선을 다했고 다하려 하기 때문이란다.

"대선 책임에 관한 한 한나라당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어요."

*** 대표경선 도전 채비

지금 한나라당이 필요한 건 책임이 아니라 했다. 국민이 바라는 건 변화란 것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퇴장을 전제로 한다 했다. 그러자면 당이 깨져선 안되고, 이를 위해 화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나진 않았지만 모나지 않은 자신이 나섰다는 얘기다.

서청원. 그는 스스로를 보수주의자라 했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는 현실주의자란 분류가 정확하다. 그가 현재 서 있는 그 자리가 생각과 행동의 출발점이다.

보수인 것은 그가 그곳에 서 있기 때문이다. 현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단순해 보이는 이유다. 도시적 얼굴에서 농부의 분위기가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연홍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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