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 속의 동양사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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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양문화의 압도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동양은 총체적으로는 서양을 지배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4백년간 서양은 정치·경제·기술적 힘의 우세를 바탕으로 전세계의 광범한 지역에 걸쳐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항하여 동양은 그 나름대로 서양을 정복했던 것이다.
물질문명에 대응하는 정신문화의 영역에 있어서, 특히 인간자아의 탐구와 내적 안심입명의 성취를 겨냥한 동양의 사상적·문화적 전용은 서양의 문화·예술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원이 요즘 『동양사상이 세계의 문학과 연극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도 논자들은 한결같이 이점을 확인하고 강조했다고 들린다.
사실상 「동양의 사상」이라고 해도 간단히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려니와, 그것은 넓은 의미에서 이미 세계의 사상 속에 융합돼 존재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동양사상이나 문화의 형식은 살아서 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변형시켜 왔던 것이 분명하다.
서양문화의 확산기에 그 사상과 제도 또는 기술 등은 「아시아」지역 곳곳에 널리 퍼졌으나 그 영향이 있기 전에도 동양의 사상과 문화는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동서 교류시대에 위력적인 식민지적 정복이나 강력한 상업적 이윤추구의 도움 없이도 「아시아」의 철학·문학·종교·민속과 연극양식은 존재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서양의 문화·예술에 스며들어 부지불식간에 이를 조종하기까지 한 것이다.
「아시아」를 정복하는데 있어 서양은 대포와 아편과 동인도회사로 충분했지만 그들이 탈취해간 동양의 문물가운데 스며있던 독특한 종교와 예술문자의 향기는 오히려 이들의 정신을 완전히 사로 잡았다고나 할까. 그 결과 오늘에 와서도 고대인도의 자연신관이나 불교의 선, 그리고 유교적 인본주의와 노장의 허무사상 등 동양의 사상적 단편들은 희납·나전적 문화풍토에 깊숙하게 침투,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본다.
뿐더러 음악·미술·무용·연극 등 각종 예술영역에서도 동양의 신비로운 미적 감동의 흔적이 약여한데 어찌 이를 모른다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현대연극에서만도 일본의 능과 가무기, 중국의 창극, 「발리」춤의 영향은 뚜렷하다. 지나치게 예술적이고 사실적으로 되어감으로써 무미 건조해지고 생명력을 잃어가던 서구연극에 참여적이고 총체적이며 비언어적인 동양의 연극은 새로운 돌파로, 새로운 활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같이 장벽에 부딪쳐 질식하는 서양의 사상과 문학예술에 생명력을 심어주는 것이 동양 문학인 것이다.
그 점에서 동양사상은 서양의 정신 그 자체의 바탕에 스며들어 이를 변형하고 성숙시키며 이것과 종합되어 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동양사상은 서양문화를 「제로」화하지는 않는 것이다. 서양문명이 수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해 왔다고 해서 동양문화의 전통이 한꺼번에 괴멸되지는 않는 것처럼, 서양의 정신적 좌절을 이용해서 동양사상이 이들을 괴멸시킬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뿌리로 발전해온 동양문화는 비인간화와 자연파괴 등 인정의 위기에 직면해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데 스스로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비록 동서문화가 상보적인 것이기는 하다지만 인간과 자연의 뚜렷한 정신적 연관을 강조하는 동양사상의 특성이 인간회복과 세계문화 발전에 기여해야 한다는 당위가 오늘처럼 절실한 때는 일찌기 없었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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