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과 균형의 사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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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밀성의 추구-이것은 오늘날 모든 사회과학의 일반적인 목표이지만 아무래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경제활동을 포함한 갖가지 사화현장의 예측이 항상 빗나가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특히 석유파동 이후에는 경제현상과 관련된 예측이 자주 어긋남을 본다. 이런 현상은 경제활동의 주체적 의사결정에 관여하는 변수가 그만큼 많아졌다는 증거일 것이다.
경제계획을 운영하는 경우 빗나간 예측은 더욱 확대된 계획이탈을 초래한다.
계획과 실적사이에는 언제나 「갭」이 존재하기마련이지만 올해의 우리경제처럼 학대된 경험은 드물다. 계획이 빗나간 것 자체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그 빗나가는 방향이 경제적으로 유익한 것인지의 여부는 중요한 문제다.
정부는 올해 경제운용의 기본방향을 성장보다는 안정과 균형에 두겠다고 밝힌바 있다.
이런 방향은 지난해의 유례없는 불안정에 비추어 수긍이 가는 방향실정이었다. 안정정책을 구체화시킨 총 자원예산에서 정부는 올해 성장률을 7∼8%로 신중하게 잡았고, 특히 통화증가율을 연20%로 압축시킨데서 일견 긴축의 의지가 약여했다.
그러나 4·4분기에 접어든 지금까지의 실적은 오히려 과열의 우려마저 낳고 있다.
상반기의 성장률이 17%룰 넘어서서 연중 15%가까운 실적을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총수요억제의 명분으로 20%까지 줄여 잡았던 통화량도 이미 30%에 가까워지고 있다. 정부는 이런 정세변화가 수출의 호전에서 비롯되었다고 차라리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성장률이 예상외로 높다거나 수출이 거의 80억「달러」에 이를 만큼 호조를 보인 점이 아니라 그 결과로 파생되고 있는 안정교란 요인들이다. 다 같은 조건이면 수출이나 성장은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올해의 기본목표를 안정과 균형으로 설정한 당초의 경제여건에 크게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객관적인 현실이 아닌가. 수요측면의 「인플레」역력히 하나도 해소되지 않았을 뿐더러 국제수지의 기본구조도 취약성을 완전 탈피한 것도 아니다.
아마도 유일한 성과는 수출의 호조와 긴밀하게 연결된 수입의 억제였다. 그 덕분에 외환보유고가 25억불까지 유지될 전망이지만, 중요한 것은 외환보유고의 수준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구성인자가 얼마나 안정적인가에 달려있다.
올해의 경제운영은 결국 수출이 잘된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너무 성급하게 안정정책을 후퇴시키지 않았나 싶다. 지난 하반기초의 수정계획에서부터 통화공급을 은연중 확대시킨 점이나 앞으로 이를 30%이상 더 늘릴 움직임조차 있는데다 겨우 기초수지안정을 유도한 수입억제도 다시 완화될 기미가 없지 않다.
이런 일련의 정책변경조짐이 현실화된다면 이는 정책기조가 없는 시책의 소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상경제의 과열에 정부가 제동을 걸거나 최소한 「중립적」이어야한다. 성장의 유혹이 아무리 강인하다해도 물가·국제수지의 안정유지를 우선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겨우 한숨 돌린 상태에서는 또 다시 뛰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릴 필요가 있다. 특히 연말이후 내년 상반기까지는 국내외에서 안정교란요인이 다시 현재화할 기미가 없지 않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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