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비밀이 생명입니다" 스위스 은행 여행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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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제네바」에서=윤호미 특파원】요 근래「유럽」독서 계에서는『의심받는 나라「스위스」』라는 책이「베스트셀러」로 한창 화제에 올라 있다.「스위스」의 사회당 국회의원이며 대학교수인「장·지글러」가 쓴 이 책은 바로「스위스」의 상징처럼 돼 버린「스위스」은행에 대한 비밀예금 내막을 폭로한 것.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스위스」를 의혹의 눈초리로 바라본다는 이 책의 제목처럼 관광객들도「스위스」땅에만 내리면『그 유명한 은행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는 것이다.
『왜 그 방향으로만 생각하는지 몰라요. 우리「스위스」은행도 다른 나라 은행과 똑 같아요. 단지 예금주의 비밀을 보장해 준다는 것뿐인데….』
「제네바」의「스위스·유니언·뱅크」의 여행 원들은「인터뷰」를 하자고 하니 대뜸 비밀예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사실 우리나라는 은행으로 큰돈을 벌고 있어요. 그래서 은행이 많지요』
인구 7백만이 못되는데 전국에 은행이 4천3백 여 군데나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40년 전에 만들어진 은행법이「비밀보장」을 규정하여 세계의 어떤 사람이 돈을 예금해도 끝까지 비밀을 지켜 준다는 신용을 갖고 있다. 그래서 2차 대전 중「나치』하의 유대인들의 돈을 지켜 준 데서부터 이제는「마피아」나 독재자들의 돈을 숨겨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하여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우리 은행들은 국내 사람들 보다 외국인들이 많이 예금하고 있어요. 또 그런 외국 고객들은 비밀구좌를 원하고 있지요.』「유니언·뱅크」에서 9년 째 일을 해 왔다는「베아트리스·뵈스크」양은 예금손님 중의 70%가 외국인이라고 말한다.
대개의「스위스」은행은 2층에 비밀창구를 두고 있는데 일단 예금을 하러 가면 여러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자그마한 방으로 안내되어 은행원과 단둘이 마주 앉는다.
혹시 한국인 손님을 마주해 본 적이 없느냐고 물었더니 응접실에 모여든 4, 5명의 여행 원들은 일제히『그건 말 할 수 없다』고 크게 웃는다.
『주로「유럽」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지만「아시아」사람도 적지 않아요. 그 정도로만 알아두세요.』「엘리자베드·수당」양은 이 직업이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접촉하기 때문에「매우 흥미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들은 고객의 비밀을 어떻게 지킬까?『길에서 단골손님을 만나더라도 절대 내 쪽에서 아는 척을 하지 않아요.』「스위스」에서 은행원은 비교적 대우가 좋은 직업이다. 최저 임금제를 실시하고 있는「스위스」의 직장인들은 누구나 한 달에 2천「스위스·프랑」(약38만원)이상씩의 봉급을 받도록 돼 있다.
『은행에서는 남녀차별이 전혀 없어서 근무연한대로 남자 행원과 독같이 월급을 받고 있어요. 혼자 지내기엔 충분한 액수입니다.』자신의 월급 액수도「비밀」이라고 말하는 이들은 보통 근무 2, 3년이면 세계에서 제일 물가가 비싸다는「제네바」에서 자그마한「아파트」와 자동차를 갖고 휴가 미국 같은 곳으로 여행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스위스」은행원이 되려면 무엇보다 외국어에 능통해야지요』
영어·독어·불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포르투갈」어 등 6개 국어를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뵈스크」양은 이 은행의 2천 여 명 행원(그 중 여자는 42%)들이 누구나 3, 4개 국어를 할 수 있다고 전한다.
처음 은행원으로 들어와서도 이 외국어 훈련을 받는데 특히 22주간 동안 실시하는「행원 교육」은 엄하기로 유명하다.
『행원교육은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편안하게 평생 단골로 만들 수 있나 하는 심리학 강의가 많아요. 그리고 비밀보장 훈련도 엄격하지요.』
누구나 입 행할 때 비밀보장의 서약을 하고 일평생 비밀을 간직할 것을 맹세한다는 것이다.
『우리들 중에서는 고객하고 결혼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렇지만 비밀은 시집을 가도, 은행을 그만둬도 죽을 때까지 지켜야지요.』
「크리스틴·비베르」양은 이제는 고객에 대해 거의「기계」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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