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람] 부산고 10회 동기생 독서모임 육독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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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책 읽는 할아버지가 되자는 당초 목적은 달성했지만 그렇다고 책을 놓을 수야 없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는 더 열심히 읽어야죠." 지난해 문화관광부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중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이 무려 28%나 됐다.

국민 10명 중 3명이 책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다. 이처럼 책이 홀대받는 풍토에서 중년을 넘겨 책읽기 모임을 시작한 한 고교 동기생들이 10년째 처음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지방 명문고 중 하나인 부산고등학교 10회 졸업생들로 구성된 '육독회(六讀會)'가 바로 그 단체. 명칭은 졸업 당시 학제가 잠시 바뀌어 6회 졸업생이 됐던 데서 따왔다.

치열한 입시전쟁을 치렀던 '실력파 세대' 이기에 회원 중에는 유명 인사가 많다. 모임의 회장을 맡은 문병국 전 트레드클럽 회장을 포함해 이상희 한나라당 의원, 허문도.허삼수 전 의원, 정구영 전 검찰총장, 이두석 내일신문 주필, 서병호 전 방송광고공사 사장, 정성진 전 기자협회장, 주석중 전 한창섬유 부사장 등. 이들 외에도 차관급 이상의 고위 공직을 맡았던 회원들이 수십명이나 된다.

하지만 이들은 바쁜 사회생활을 핑계로 책을 멀리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50대 중반을 지나던 1993년 초에 독서모임을 결성했다.

졸업동기인 수필가 주석중씨가 '흰머리가 늘고 눈가의 주름도 깊어지는데 손자에게 무게 실린 덕담을 해줄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책을 가까이 하자'는 내용의 연판장을 돌린 것이 계기가 됐다.

그렇지 않아도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왔던 동기들은 朱씨의 제안에 동의했고 금세 10여명의 회원이 모였다.

당시에는 회원 대부분이 현직에서 바쁘게 생활하고 있어 책의 선택이나 모임의 형식은 자유롭게 했다. 그래서 '전문적인 책을 고르기 보다는 딜레탕티즘(예술애호)에 입각한 독서를 한다'라고 운영방침을 정했다.

각자가 최근에 읽은 책을 얘기하고 그중 한 권을 선택해 함께 읽은 뒤 의견을 나누기로 한 것이다. 이들이 처음 고른 책은 '역사 앞에서'(김성칠 저)로 발제는 임채욱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가 맡았다.

이렇게 시작된 모임은 연중 한여름과 한겨울 4개월을 뺀 8개월 동안 매달 열렸고 회원 수도 40여명으로 불었다. 그동안 발제를 맡고 약속을 어긴 회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동양사상을 너무 외면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는 동기들의 푸념에 현영록(사업).이재화(회계사)씨 같은 회원들은 대학시절 전공을 살려 '논어'를 다시 독파한 뒤 아예 1년간 회원들에게 강의하기도 했다.

이렇게 함께 독서를 해서 좋은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회원들은 "독서도 좋지만 회원들의 살아온 길이 각기 다른 만큼 사안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접할 수 있어 세상살이에도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7일 육독회 회원들은 서울 장충동의 한 갤러리에서 창립 10주년을 기념하는 81번째 독서모임을 가졌다. 대폿잔을 기울이던 평소 모임보다 약간 화려하긴 했지만 이날도 독서토론을 빼놓지 않았다. 이날 발제는 특별히 동창회장인 鄭 전 총장이 맡았다.

책은 소설 '칼의 노래'(김훈 저). 발표에 앞서 鄭 전 총장은 "창립 10주년 행사에서 실수하지 않기 위해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고 말해 친구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남궁욱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사진 설명 전문>
육독회 회원들이 창립 10주년 독서모임에 앞서 발제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병호 전 방송광고공사사장.문병국 전 트레드클럽회장.정구영 전 검찰총장.허삼수 전 청와대사정수석비서관.정성진 전 기자협회장.주석중 전 한창섬유 부사장. [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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