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혀진「흐루시초프」, 「고물카」의 역사적 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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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흐루시초프」전 소련 수상은 56년10월19일「미코얀」「모로토프」「카가노비치」등 소련 지도자들과 일단의 소련 장성들을 거느리고 예고도 없이「폴란드」수도「바르샤바」공항에 위세도 당당하게 내려섰다.
55년2월 소련공산당 20차 전당대회에서 그가 비밀보고서를 동해「스탈린」의 죄과폭로와 함께「스탈린」격하운동을 시작한 후「폴란드」와「헝가리」에서는 이에 대해 주체할 길 없는 반응이 쏟아져 나왔으며 이러한 반응에는 다분히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이다.
「흐루시초프」를 맞은「폴란드」지도자들은 우선「고물카」를 중앙위원으로 선출한 후 일단 회의를 중단한 채「흐루시초프」일행과의 협상에 들어갔다. 이날 회담은 하오에 시작되어 밤을 꼬박 새우면서 계속되었다.
「고물카」는 이 회담에서「폴란드」소련간의 동맹관계를 강화하고 싶다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면서도 농업의 비집단화 종교의 자유화 정치생활의 민주화 등「폴란드」공산주의 실천방안도 강력히 옹호했다.
결국 현장은 난관에 봉착했고「흐루시초프」는「고물카」의 반대에 직면해서 난감한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흐루시초프」는 이때 결정적인 마지막「카드」를 쥐고 있었다.
즉「폴란드」의「발트」해안과 동독국경 근처에 주둔해 있던 소련「탱크」들이 전속력으로 수도「바르샤바」를 향해 집결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 목격자는「폴란드」경찰관 1명이「흐루시초프」「고물카」회담이 개최되고 있던 회의실에 시간마다 들어와서 소련군의 배치상황을 밝힌「메모」지를「고물카」앞에 놓고 나갔다고 말했다.
새벽녘에 소련군「탱크」들이「바르샤바」교외에 도달하자「고물카」는「흐루시초프」에게「탱크」의 전진을 중지시켜 달라고 요청하면서 그렇지 않을 경우 자기는 방송을 통해 소련대표단의 요구사항과「폴란드」의 입장을 국민들과 전세계에 공표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흐루시초프」는 이에 굴복하고『「로코소프스키」·「탱크」의 전진을 중지시키게 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고물카」는 말을 가로막으며『「로코소프스키」에게 지시하지 말고 귀국의 장교에게 지시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20일 아침 소련대표단은「모스크바」로 돌아갔고「폴란드」중앙위는 회의를 속개한 후「고물카」를 당 제1서기로 선출하고 말았다. 【AFP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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