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괴 조총련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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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재일 동포 어당씨 사건은 복합적으로 얽힌 여러 문제를 표출 시켰다. 우선 어씨의 조총련 탈퇴 결심에서 조총련조직의 내부분열과 상당수 의식 분자들의 고민이 드러났다.
반면 조총련 행동대에 의한 그의 납치 및 자택감금은 이러한 조총련 내부의 분열에 당황한 북괴와 조총련의 고조된 광기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백화에 조총련의 불법납치가 자행되고, 20여일간이나 감금상태가 계속되는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인 일본정부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를 볼 수 있었다.
어당씨 사건은 바로 이 세 가지 요인이 복합 된 데서 비롯한 전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조총련조직은 원래 그 생성과정부터 분열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 일본공산당의 지도하에 있던 조직이 지난 55년 북괴노동당에 종속하게 되면서, 이른바「민족파」와 「민대파」의 대립이 있었다.
북괴는 그 이후 조총련에 조직분규가 있을 때마다 한덕수 등 주류파를 도와 자금을 지원하고 반대파를 북송시켜 제거했다. 그 대신 북괴당국은 조총련 지도부가 김일성에 대한 절대적 충성심을 서약하도록 강요했다.
그러나 북괴가 어떠한 책동을 해도 거기에는 폐쇄적인 북한 땅이 아니라 개방사회인 일본이라는 장소에서 오는 한계가 따랐다. 시대착오적인 북괴의 이른바 유일 사상 체제에 대해 자유사회인 일본에서 생활하는 재일 동포들이 회의를 느끼게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하물며 봉건적인 김일성 가문의 권력세습을 획책하고 있는 마당에서랴. 그러한 갈등에서 비롯한 조총련의 내부분열과 이탈의 대표적, 예가 바로 조총련의 발족이다. 조총련에 가입까지는 안 했더라도 조총련 동포들의 모국방문과 겹쳐 조총련 조직원들은 전에 없이 크게 동요되고 있다.
지난 5년간 조총련을 이탈한 사람이 수천 명이며 조총련이 운영하는 조선대학교 출신자들 중에선 반 이상이 조총련조직을 이탈했다는 것이다.
어씨가 조총련을 탈퇴하고 모국을 방문하려 했던 것도 조총련 내 상당수 의식 있는 사람들의 공통된 회의와 고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가 납치 감금된 후 조총련의 일부 문화관계자, 조선대학교 직원 및 제자 등이 그를 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외신보도를 보더라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북괴와 조총련지도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씨를 본보기로 처치하려 하고 있다. 처치하는 방법은 그들의 상투 수법인 북송 조치다. 일단 북송만 되면 어씨는 김일성 주의와 북괴에 대한 그의 비판 때문에 가혹한 책벌을 받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어씨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씨가 북송 음모에 끝까지 버티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러기까지 그가 당하는 고초가 얼마나 가혹하리라는 것은 짐작되고도 남는다.
이러한 어당씨의 괴로움이 20일이나 계속되도록 일본 정부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답하기 그지없다. 어당씨의 동생 어영씨로부터의 신고까지 있었고, 그렇지 않더라도 한국정부의 통고와「매스컴」의 보도로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진을 방치하는 이유를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아마 일본당국으로서는 동족간의 귀찮은 문제에 끼여들지 않겠다는 약삭빠른 생각에서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약삭빠른 태도가 조총련의 불법행위를 눈덩어리처럼 확대시켜 더 큰 문제를 낳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마침 일본 정부 당국자들도 어씨를 직접 만나 경위를 알아보겠다고 했다니 어씨의 진의가 자유롭게 밝혀져 북송 음모가 저지되도록 성의 있는 조사활동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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