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시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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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심청은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백 석에 자기 몸을 팔았다. 그런 심청이가 만약 오늘에 태어났다면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을까?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된 국민의료시혜 확대방안은 주로 저소득층 병자에게만 해당되며 필경 실명은 병에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심봉사가 개안수술을 받을 길은 없다. 결국오늘의 심청도 몸을 팔아야 아버지 눈을 뜨게 할 수 있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심청은 몸을 말지 않고서도 자기 아버지의 개안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GNP총액의 3.5%에 이르는 6억2천6백만 파운드를(약1백75억 원) 국민의료사업에 충당하고 있다. 의치는 물론, 안경비용 일부까지도 정부가 부담할 정도다.
정부가 발표한 의료시혜확대방안에 따른 내년도 기금 93억 원도 물론 적은 것은 아니다. 우리네 민화에는 부모의 병을 고치려고 자기 육신을 도려내거나 몸을 파는 효자·효부의 얘기들이 자주 나온다. 일제 때만해도 병에 쓰러진 농부가 땅을 내놓고, 딸을 팔고 하는 비극이 적지 않았다.
따라서 이제는 이런 일이 없어지게 된 것만도 여간 대견한 일이 아니다. 적어도 국민의 6%에 해당하는 극빈자가 무료로 입원하고 치료받을 수 있다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그러나 나머지 94%의 국민의 의료비문제는 앞으로 어떻게 한다는 말인가. 그 중의 적어도 30%는 여전히 중환자 한 명만 생겨도 집을 팔아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에 의료보험제도를 구상중이라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위로 보아 그것은 아직도 꿈같은 얘기일 뿐이다.
선진국에서는 비록 영국만큼 의료보험이 철저하지 못한 미국에서도 한 달에 5달러 내지 8달러만 내면 온 가족이 누구나 마음놓고 21일 동안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의료보험제가 있다.
입원실도 반독방이며, 의사도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있다. 이렇게 풍족한 혜택을 받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한동안 TV에서 인기를 모았던 『마커스·웰비』에서 보면 환자들이 현금을 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거의 모두가 그런 보협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조금도 환자들이 비굴하지도 않고 의사들이 불친절하지도 않다. 결국은 제도화한 의료시혜의 혜택에 대한 국민 일반의 인식이 얼마나 깊으냐는 게 중요하다.
최근에 어느 의대생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의술은 이제 인술이 아니라는 게 지배적이었다. 이 말에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특히 간호부들이 환자들에게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료시혜의 확대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의료보험에 대한 국민일반과 병원당국자의 인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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