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운동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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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오늘은 우리들의 즐거운 잔칫날, 운동회 날이란다.
제발 비오지 말아달라고 잠꼬대처럼 기원하던 이날.
엄마랑, 아빠랑, 그리고 옳지 개구쟁이 동생도 끼여줘야지. 언니가 맛있게 마른 김밥으로 자기 도시락부터 싸 달라고 졸라대던 개구장이 동생이 울음보를 터뜨리면 큰 일이니까.
신나게 운동장에 울려 퍼지는 운동회의 노래.
하늘 가득히 걸려 휘날리는 5색의 만국기들.
정말로 오늘은 우리들의 잔칫날. 청팀 이겨라, 홍팀 이겨라.
작년엔 달리기에서 3등 했지만 올해에는 꼭 1등을 하고 말 테야. 키도 커졌고 달리기 연습도 아침마다 했으니 강수쯤은 문제없이 올해엔 꺾을 자신이 있거든.
아빠말로는 운동회는 17세기부터 있었다나. 그땐 주로 사람 웃기기 경기였고, 절름발이 경주, 개구리 잡아오기 경주, 찻잔 나르기 경주…. 그러니까 마을 전체가 하나가 되어 친목을 도모했던 운동회였더란다.
학교운동회의 시작은 1849년 영국 옥스퍼드 군하에 세워졌던 육군사관학교에서란다. 호랑이 체조선생님도 오늘만은 싱글벙글, 교감선생님도 싱글벙글, 모두가 싱글벙글.
청팀 이겨라. 홍팀 이겨라. 줄다리기에선 청팀이 이기고 「릴레이」에선 홍팀이 이기고.
이번엔 아빠들의 경주.
아빠 이겨라, 앞지른 민수 아빠를 빨리빨리 따라라. 1등은 남비, 2등은 주전자, 3등은 공책, 그것도 열권.
난 공책을 갖고 싶지만 엄마는 남비가 더 좋다니까 꼭꼭 1등을 해야돼, 아빠.
청팀 이겨라, 홍팀 이겨라. 청팀이 지금은 10점을 앞섰지만 여 선생님들의 홍백 공 넣기에만 이겨도 뒤집힌다.
이겨라 이겨라, 우리 선생님 이겨라.
작년엔 상품으로 상품을 세 권밖에 못 땄지만 올해엔 연필도 따야지. 그때 나보다 상품을 더 땄다고 뽐내던 창수가 얼마나 부러웠는지….
그런 나를 보고 아빠는 그 까짓 공책일랑 열 권도 더 사주시겠다고 위로해 주셨지만 아빤 상품을 모르셔서 그래.
어른들은 모두가 마찬가지. 이번에도 운동회에서 상품을 줘라 따라하고 어떤 어른들이 공연한 시비를 하셨다. 상품으로 해서 어른들이 흑 나쁜 짓을 할까 염려해서였다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들의 꿈을 빼앗고, 운동회의 재미마저 죽일 필요는 없었을 텐데….
어른들은 상품이 뭔지를 모른다. 아니 어린이운동회가 뭔지를 전혀 알지를 못하고 있는가보다.
그냥 우리들이 청팀 이겨라. 홍팀 이겨라고 합창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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