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식 기자의 야구노트] 10년 넘은 포수 가뭄 … 마흔 살 노장도 귀한 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프로야구에도 비상장 우량주가 있다. 롯데 포수 장성우(26)다. 퓨처스(2군)리그에 있다가 지난 10일 1군에 올라왔다. 롯데가 지난겨울 역대 최고액(4년 총액 75억원)에 재계약한 강민호(29)에게 밀려서다. 장성우의 기량이라면 다른 팀에서 주전으로 뛸 수 있다. 최근 몇몇 팀이 장성우를 데려오기 위해 트레이드를 추진했지만 롯데는 1군 선수 2명을 줘도 장성우를 내주지 않겠다고 한다. 거래시장 밖에서 장성우는 연일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주엔 대형주가 시장에 나왔다. 이만수 감독과 갈등을 일으킨 SK 포수 조인성(39)이 트레이드를 요청했다는 보도가 나온 것이다. “트레이드 요청은 와전된 것”이라는 SK 구단의 진화에도 불구하고 트레이드설은 계속 퍼지고 있다. SK엔 정상호(32)가 주전 포수로 뛰고 있다. 조인성은 고액 연봉(4억원)을 받는 노장이지만 사정이 급한 팀들은 유망주를 주고서라도 그를 데려오고 싶어 한다.

 롯데와 SK, 그리고 양의지(27)가 마스크를 쓰는 두산을 제외한 모든 구단은 포수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프로야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은 매일 포수의 실책 장면을 보여준다. 머리 위에 뜬 플라이 볼을 놓치는 건 예사다. 2루 송구를 하려다 바로 앞에 패대기치거나 원바운드 볼을 연속해 뒤로 빠뜨리는 일이 허다하다. 포수들 기량만 따지면 1990년대보다 요즘이 더 떨어진 느낌이다. 김응용(73) 한화 감독은 “9회 1이닝이라도 확실히 맡아줄 ‘마무리 포수’가 있었으면 좋겠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김 감독은 11일 대전 넥센전에서 6-1로 앞선 8회 마무리 투수 김혁민과 함께 마무리 포수 정범모를 ‘진짜로’ 냈다. 하지만 결과는 6-7 역전패.

 레너드 코페트의 명저 『야구란 무엇인가』는 ‘포수는 경기장에서 투수 다음으로 중요한 존재’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프로야구의 포수난은 10여 년 전 시작됐고, 점점 깊어지고 있다. 국내 최고의 포수 지도자 조범현(54) kt 감독은 “포수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희생이다. 모든 공로를 투수에게 돌리고 포수는 뒤로 숨어야 한다. 포수는 공을 ‘받아내는’ 존재고, 쭈그려앉은 채 동료 8명을 마주 보며 ‘감싸는’ 자리다. 그런데 요새 누가 희생하려고 하는가”라고 물었다.

 포수는 야구의 3D 업종이다. 한 경기에서 200번씩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수백 개의 사인을 주고받느라 어렵고(Difficult), 시도 때도 없이 투구에 얻어맞고 주자와 충돌하느라 위험하고(Dangerous), 감독·코치와 투수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참으로 더럽다(Dirty). 귀한 자식에게 포수를 시키겠다는 학부모가 별로 없다. 동료를 위해, 팀을 위해 희생하는 역할을 해보겠다는 학생 선수는 더 드물다. 재능 있는 선수들은 대부분 박찬호나 이승엽·류현진을 꿈꾼다. 이런 현상이 포수 자원 부족으로 이어졌다. 다른 포지션과 달리 포수는 프로 1군에 올라와도 몇 년을 더 배워야 하는데, 요즘 젊은 포수들은 그럴 틈이 없다. 미완의 상태로 경기에 나가니 실수투성이다. 이게 포수난의 실체다.

 생각을 바꿔보자. 좁고 힘든 길을 걷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험로(險路)를 헤쳐나오면 곧고 넓은 길이 기다리고 있다. 마흔 줄의 박경완·진갑용·조인성은 수십 억원의 자유계약선수(FA) 계약을 두 번 이상씩 했다. 서른 살도 안 된 강민호는 연평균 20억원을 받는다. 1군 통산 타율 0.229, 홈런 2개를 기록한 장성우의 인기는 천정부지다. 소통 능력이 중요한 포수는 외국인 선수에게 자리를 빼앗길 염려도 거의 없다.

 그뿐인가. 포수는 은퇴 후 취업률이 가장 높은 포지션이다. 프로에서 웬만큼 활약했던 포수는 여러 구단이 배터리코치로 모셔가려고 경쟁한다. 조 감독을 비롯해 프로 10개 구단 중 4개 팀 사령탑이 포수 출신이다. 젊어서 힘든 만큼 훗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선수 시절 조범현은 무명에 가까운 OB 포수였다. 그게 서러워 은퇴 후에도 포수 공부를 계속했고, 독하게 박경완을 키워냈다. 박경완은 친구(김원형 SK 코치)의 도움으로 1991년 쌍방울에 겨우 입단한 연습생이었다. 전주야구장이 문을 닫아 동네 놀이터에서 밤을 지새우며 훈련했던 둘은 지난 8일 수원의 성균관대 야구장에서 kt 감독과 SK 2군 감독으로 만났다.

 지난해 은퇴한 박경완은 코치도 거치지 않고 2군 사령탑에 올랐다. 그는 “다시 태어나도 포수를 하겠다. 포수는 빛나지 않는 포지션이라고 하지만 포수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박 감독의 말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명장 노무라 가쓰야(79)가 “난 평생 포수다”라고 한 것과 맞닿아 있다. 오 사다하루(왕정치) 이전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657개), 타점(1988개) 기록을 갖고 있었던 노무라는 연습생 포수 출신이다. 포수였기 때문에 그는 45세까지 3017경기를 뛸 수 있었고, 감독이 돼 2009년 74세 나이로 은퇴할 때까지 3204경기를 지휘했다. 좁고 힘든 길에서 그들은 답을 찾았다.

김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