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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오바마의 집요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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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렬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상렬
뉴욕 특파원

중국에서 ‘표현의 자유’와 ‘보편적 인권’의 중요성을 멋있게 강조하고 돌아온 미국 퍼스트 레이디 미셸 오바마 여사가 정작 미국 내에서 간단찮은 저항(?)에 직면했다. 공립학교 학생들이 학교 급식이 맛이 없다며 미셸 여사 트위터 계정에다 분노에 찬 메시지를 날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엔 “점심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었다. 내 인생을 망친 미셸 오바마, 고맙다”도 있다. 학생들이 불평하는 식단은 이른바 ‘건강 식단’이다. 메뉴에 10대들의 입맛을 당기는 지방과 설탕 성분은 적고, 과일과 야채는 매일 나온다. 많은 학생이 이런 급식을 손도 대지 않고 버린다. 이렇게 버려지는 음식물이 연간 12조원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학생들이 ‘몸에는 이롭지만 맛은 없는’ 식단의 배후로 미셸을 지목한 것은 제대로 짚은 것이다. 급식이 그렇게 된 건 2012년 미국 연방정부가 제정한 학교건강식단급식법 때문이다. 미셸은 이 법 탄생의 산파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퍼스트 레이디의 역할 공간엔 제약이 많다. 적극적이어도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소극적이어도 비난을 받는다. 지켜보는 눈도 많고, 편승하려는 세력도 적지 않다.

 미셸은 퍼스트 레이디 과업으로 소아비만 퇴치를 붙잡았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 청소년 가운데 30% 정도가 과체중 또는 비만일 정도로 소아비만은 심각하다. 미셸은 2010년 소아비만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레츠 무브(Let’s Move!)’ 캠페인을 시작했다. 학생들에게 더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고 더 많은 신체활동을 장려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연방정부가 손댈 수 있는 공립학교 급식이 제일 먼저 수술대에 오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셸은 집요했다. 급식 메뉴만 바꾼 것이 아니다. 올 9월부터는 초·중·고 학교 내에서 설탕이 들어간 음료와 정크푸드 광고가 금지된다. 정크푸드가 아이들 주변에 발을 못 붙이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식품 성분 표시 관행도 바뀐다. 앞으로 새로운 식품 라벨은 칼로리를 더 크고 굵게 표시해야 하고, 첨가 설탕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한다. 라벨 전면교체 비용만 2조원이 넘는 대형 프로젝트다. 로비력 강하기로 유명한 식품업체와의 일전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미셸 본인이 직접 나서는 것은 물론이다. 소아비만 퇴치 행사 참여는 기본이고, 방송에 나가 팔굽혀펴기를 하고 막춤을 추며 망가지기도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했나. 2~5세 비만율이 2004년 14%에서 2012년 8%로 줄었다는 통계가 최근 발표됐다.

  나는 미셸과 레츠 무브 운동에서 개혁정책 성공의 필수요건 한 가지를 본다. 집요함이다. 관행과 타성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개혁이든 단기간에 성사되는 시기는 지났다. 반대 세력을 설득하는 일도, 개혁의 디테일을 만드는 일도 모두 집요해야 한다. 서비스산업 선진화든, 한식 세계화든 방향은 옳게 잡고도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일이 많은 것 같아서 하는 얘기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