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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긴장」을 보는「워싱턴」의 시각|북괴 판문점 만행·전투태세 명령의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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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워싱턴=김영희 특파원】미국이 근년에 이번 판문점 사건 및 북괴 전군 전투태세 명령과 비슷한 유형의 도발을 받은 예는 68년의「푸에블로」호 피랍 및 EC-121 피격사건과 75년의「마야궤스」호 피랍사건 등이었다. 전자의 경우 때늦은 무력시위로 끝났고 후자의 경우 즉각적인 보복조치로 후에 미국 내 일부에서「과잉반응」이라는 비판을 받은바 있다. 이번 판문점 사건과 뒤이은 북괴전군 전투 태세 령에 대한 미국 측 반응은 현재 진행중인데 그 귀추를 살펴보기 위해 미국 내 각계의 여론의 방향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판문점 사건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빠르고 단호한 반응은 뒤따라 취해질 미국의 행동을 암시한 것이었다.
「키신저」국무장관은 사건을 보고 받은 18일 백악관 상황실에서 두 차례의 국가안보회의를 주재하고 황 진 중공 연락사무소장을 급히 국무성으로 불러 미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중공의 협조를 요청했다.
19일 상오 열린 세 번째 국가안보회의까지는 벌써 주한미군에 대한 경계 령 3호와 2개 비행대대의 한국파견을 결정했다.
국가안보회의 모임에서는 북괴가 만행을 저지른 동기를 분석하고 북괴가 취할지도 모르는 다음 행동을 논의했는데 그 자리에서 특이하게도 국무성 사람들이 국방성 사람들보다도 강경 론을 폈다.「키신저」는 한미 혼성부대를 비무장지대 바로 남쪽에 바싹 붙여서 이동시켜 북괴에 압박을 가하는 조치의 실현성을 물었다. 그러나 현지의 지세를 잘 아는「펜터건」사람들이 그런 조치가 위험하고 불가능하다는 견해를 제시하여「키신저」를 납득시켰다.
회의 참석자들은 북괴의 만행이 사전 계획된 것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조지·부쉬」CIA국장이 제공한 정보자료에는 북괴군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은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그때부터「워싱턴」의 긴박감은 사라지고 안보회의 모임은 검토의 성격으로 돌아갔다.
국무성이 국방성보다도 오히려 강경 론을 들고나선 것은 북괴의 도발이 당초부터 외교적인 목적을 위한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국무성은 당장 판문점 사건을「콜롬보」의 비동맹회의와「유엔」의 한국문제와 연결시켰다.
북괴는 주한미군 때문에 한국에 전쟁위험이 있다고 주장해 왔다. 북괴는「콜롬보」비동맹회의와「유엔」에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는 결의안을 제출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실증」하기 위해서 폭발직전의 긴장이 필요했다고 미국 정부는 해석했다.
그래서「키신저」는 선거의 계절이라는 미국의 특수사정이 허용하는 한도 안에서 강경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키신저」는 20일 아침 NBC-TV와의「인터뷰」에서 북괴에 대한 미국의 요구는 사건의 해명과 배상(Reparations)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키신저」는 미국이 지금부터 취할 대응책은 북괴가 미국의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에 달렸다고 의미심장한 경고를 하는 것 을 잊지 않았다.
「키신저」는 주「워싱턴」중공 연락사무소강 황 진을 만나면서도 소련대사는 아직 만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 휴전선 일대의 분쟁에 관한 한 소련보다는 중공이 영향력이 크다는 판단의 결과이다.
「키신저」의 그런 입장은 77년부터 미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지미·카터」의 입장과는 흥미 있는 대조를 이룬다.
「카터」는 한국문제에 관한 한 중공보다는 소련의 역할과 영향을 중시하는 태도다.「카터」는「런던」의「선데이·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한국의 안보에 대한 소련의 보장이 한국문제 해결의 전제 조건이라고 밝힌바 있다.
선거의 쟁점이라는 견지에서 한국문제를 놓고 보면 판문점 사건은「카터」보다는「포드」 에게 유리하게 보인다.「포드」는 주한미군의 철수는 북괴의 침략을 초래하는 유인이 된다고 주장한다.「카터」는 주한미군의 단계적인 철수가 가능한 것으로 믿는다. 그런데 판문점사건은 한반도의 분쟁은 사소한 나무를 발단으로 해서도 폭발 점까지 미칠 수 있다는「포드」의 견해에 가까운 교훈을 남겼다.
의회 쪽에서「존·머피」하원의원(뉴요크 주)이 보인 반응도 그런 것이다.「머피」의원은 사건이 나자 즉각 성명을 발표하고 판문점사건은 주한미군 철수를 노린 북괴의 주장에 동조하는 일부 의원들과 여론의 태도를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하원이 소집되는 23일「머피」의원은 북괴규탄 결의안을 하원에 제출한다. 거기서「프레이저」의원 같은 사람들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가 주목된다.
미국 신문들의 반응은「뉴요크·타임스」지가 사건 다음날 재빨리 사설을 싣고 북괴의 야만적인 행동을 규탄했을 뿐 다른 주요신문들은 사설을 통한 논평은 하지 않고 해설기사를 통해서 주로 흥분보다는 냉 정을 촉구하고 있는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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