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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승자와 패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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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주위상책」. 싸움하지 않고 피하고 달아나는 것이 안전을 위한 최상의 방책이라는 뜻이다.
『노자도덕경』에도 「훌륭한 전사는 무용을 부리지 않고 싸움 잘 하는 자는 성내지 않으며 적에게 가장 잘 승리하는 자는 적과 대전하지 않고 사람 잘 쓸 줄 아는 이는 그 사람 앞에 몸을 낮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다같이 잘난 체 뽐내거나 함부로 싸움을 걸어서는 안된다는 훈계라 하겠다.
이런 교훈 때문인지 「은자의 나라」 백성들은 싸움을 좋아하지 않았다. 호전적인 민족이 아닌 탓이다.
외국의 한 문필가는 한국인의 싸움을 「군자의 싸움」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부딪치자마자 칼을 뽑아들고 피를 보고야마는 일본무사들의 살기 등등한 싸움과는 딴판이다.
두루마기에 갓 쓰고 장죽을 휘두르며 반시간이고 한시간이고 입씨름이나 하고, 구경꾼들 들으란 듯이 선은 이렇고 후는 이렇다고 핏대 올려 사설을 늘어놓는다. 좀처럼 치고 받지 않는다. 기껏해야 팔을 걷어올린 채 밀거나 당기거나 할뿐이고 한번 멱살을 잡았다하면 싸움은 고비에 달하는 셈이나 오래 안가 흐지부지 되고 만다. 구경꾼 중 말 깨나 하는 중재자가 비집고 들어가 뜯어말리기 때문이다.
중재꾼이 개입하면 싸움꾼들은 더 큰소리로 고함치고 버둥거리나 천동만 으르렁거릴 뿐 번개 번쩍하는 주먹질이나 발길질 한번 제대로 안하고 말리는 사람 얼굴 봐서 마지못해 참는 양 눈을 흘기고 팔을 휘저으며 물러간다.
행세 깨나하는 선비들의 시비만이 아니라 시정잡배들의 싸움도 거의가 이 같은 「군자의 싸움」이요, 싱겁기 그지없는 싸움이 있다.
이에 비해 일본 「사무라이」들의 싸움은 「국화와 칼」에서도 암시하고 있듯이 잔인하기 그지없었으며 반드시 피를 봐야만 끝장났다. 그리고 걸핏하면 권총을 뽑는 「서부의 사나이」들이 아니더라도 서양인들에겐 결투의 풍습이 있었다.
자기의 위신, 가문의 명예를 위해 결투를 했다. 칼이면 칼, 권총이면 권총, 서로 동일한 조건에서 입회자의 지시 하에 목숨을 건 망망한 싸움을 한 것이다.
하기야 자기보다 월등히 강한 자의 결투신청도 거절하지 못한 채 목숨을 버리게 될 결투장으로 나가야하는 결투라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우기 사소한 시비나 숙녀 앞에서의 모욕 같은, 그렇게 대수롭지도 않은, 그리고 대화로써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 때문에 귀중한 두 목숨을 선뜻 걸어버리는 결투행위에는 생명에의 존귀함, 외경감이 결여된 느낌이 없지 않다.
그러나 결투는 「페어·플레이」 정신·정정당당한 대결정신을 길러주었다.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히 겨루지 못하고 뒤에 숨어서 비방·모함하는 비열한 행위, 등뒤에서 치는 야비한 행위를 배격하는 정신풍토확립에 기여한 것만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결투의 전통과 풍속이 없었고, 따라서 싸운다 해도 삿대질이나 하고 멱살이나 잡았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싸움도 「평안도박치기」의 장기를 계승하고 부관참시의 수법을 본받았음인지 요즘엔 아주 양상이 달라졌다.
군자의 점잖은 싸움이 아니라 잠깐 사이에 결판이 나는 싸움으로 변한듯하다.
「재크나이프」와 쇠몽둥이 같은 흉기까지 등장하는 살벌한 피투성이 편싸움조차 가끔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의 양상은 역시 「프로·레슬링」비슷하다.
「프로·레슬링」을 보고있으면 「링」위에서 싸우는 「레슬러」들은 「룰」 같은건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숫제 그런 것은 무시하거나 어기기 일쑤다. 얼굴을 물어뜯고 급소를 걷어차고 숨겨갖고 간 흉기로 상대방을 찌른다. 심판도 이를 적극 제지하지 않고, 관람자들은 그런 반칙이 자주 있어야 신이 난다는 태도다.
이처럼 「룰」을 어기고 반칙으로 시종하는 경기와, 그런 경기 끝에 이뤄지는 승패에 사실 무슨 뜻이 있는가. 승자의 영예도 영광도 「파이트·머니」이왼 한푼어치의 가치도 없다. 패자가 승자를 존경하고, 이에 마음으로부터 승복하는 일은 거의 없다.
목숨을 건 결투에서 승자는 교만하지 않고 관대하며, 패자는 이에 깨끗이 허리 굽혀 승복하는 경향과는 판이하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중엔 대상적으로 자기의 우월을 주장하는 수단으로 싸움을 거는 경향도 있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제도로서의 싸움」인 논쟁이나 정쟁·사업상의 경쟁 등을 교묘히 이용하여 경쟁자에게 독 묻은 화살을 등뒤에서 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모든 수단·방법을 동원하고, 비열한 반칙을 거듭하면서 도전하여 싸우고, 그러다가 패해도 잘못을 뉘우침이 없이 보복의 기회를 노리니 건전한 사회기풍과 기강이 확립되기 어렵다.
싸움이란 원래 협력·협조와 반대되는 사회관계다. 사원과 증오와 복수심에 찬 「더티」한 싸움과 공명정대한 경쟁은 비록 다같이 「이반적 사회과정」이긴 하나 그것이 사회에 미치는 영양은 아주 다르다.
싸움은 처음부터 상대를 직접적으로 부정하고 시작하나 경쟁은 상대를 인정·이해하고 부득이 간접적으로 상대를 부정하는 원칙 위에서 벌어지기 때문이다.
공명정대한 경쟁과 투쟁을 하고 그 결과에 모두가 승복할 때 비로소 경쟁과 대결은 생산적이며 발전적인 것으로 되는게 아닌가. <남상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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