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전과 8·15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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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차 대전에서의 연합국의 승리는 전세계 인류에게는 자유·민주·이성의 승리를 약속해 주었고, 한민족에게는 그밖에도 일제의 쇠사슬로부터의 해방을 안겨주었다. 해방 31년. 이 격동의 시기는 한국인에게도 다른 모든 신생국들과 마찬가지로 「버려야할 것」과 「창조해야할 것」이 무엇인가를 가려내서 행동화하는 충격의 한 세대였음에 틀림없다.
정치·경제 제도에서 「스커트」의 길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케이프타운」에 이르기까지의 지구 문명 전체의 격랑이 한국의 구석구석에도 심각한 「문화적 충격」을 일으킨 것이다.
이 충격은 한국인의 삶의 형식과 용량을 비약적으로 증폭시킨 것이 사실이다. 광역화·거대화·고속화가 우리 생활의 전 영역을 휩쓸었다. 그리하여 한국인도 이체 어차피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인이 된 셈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는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반드시 간직해야 할 것을 간직하지 않고 충분히 소화해야 할 것을 소화하지 못한 것은 없었던가. 또 능히 만들 수 있었고 만들어내야 했던 것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이룩하지 못한 일들은 없는가. 이것이 충분히 구명되지 않는 한 8·15는 여전히 미완의 이상이다.
우리는 8·15를 자력으로 지켜오지 못했기 때에 「8·15전」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린 것은 아닐까.
불행했던 과거에 집착하는 나머지 밝은 내일의 지향을 그늘지게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기억해야 할 일들을 기억하지 않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무분별한 불감증을 유발하기 쉽다.
8·15후의 무질서했던 사상적 혼란과 외래 사조의 홍수도 따지고 보면 의식의 그 같은「아노미」 현상에 기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길이 기억해야 할 지난날을 기억하지 않는 것이나, 굳이 받아들일 필요 없는 개방기의 방종을 허겁지겁 받아들인 것은 실상 똑 같은 무분별의 소치였다.
자기 정신을 차리고 줏대를 세운 뒤 보편적인 이성과 균형 잡힌 심성에 바탕 한다면 그와 같은 혼선은 얼마든지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민족 문화를 보호하는 일과 건전한 세계 조류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일은 서로 모순되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이성의 조절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 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에 달려있다.
이것은 전후와 해방으로 각각 표현되는 세계인과 한국인의 「8·15후」가 마지막으로 도달한 공통의 반성이요, 결론이라 믿어진다.
이성의 지혜와 사랑의 힘만이 우리가 지금까지 팽창시켜온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줄 것이며, 그렇게 될 때 8·15의 완성이라 할 민족의 통합과 국토의 통일로 앞당겨질 것이다.
더욱더 「살만한 삶」을 착실히 엮어가면서, 온 겨레가 그것을 아끼고 지켜 나가는 한 공산당의 옹고집인들 무슨 도리가 있을 것인가. 「살만한 삶」 또는 「살만한 환경」의 기초는 이른바 「상호 신용의 격차」를 줄여 가는데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인이 국민을 신뢰하고 국민이 정치인을 믿을 수 있는 신용의 정치, 소비자와 생산자가 공정하고 떳떳한 「룰」에 따라 공의로운 풍요를 엮어 가는 그런 경제.
모든 이웃들이 부신과 불안을 씻고서 안심하고 생업에 정진할 수 있는 믿음의 사회.
전쟁 없고 공해 없는 지구를 만들려는 모든 인류의 염원에 동참하는 인간 부흥의 문화. 이것을 우리는 한국인의 이상을 설정한 8·15의 복원력에서 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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