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5천년의 국내 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문화 5천년간의 정수를 한데 모아 일본국민들에게 선보였던『한국미술5천년 전』의 국내전시회가 9일부터 중앙박물관에서 개막되었다.
경도·복강·동경 등에서 1백20일 동안 전시되어 연60만 명 이상의 일본인들에게 한국고대문화의 찬란한 맥락을 강렬하게 인상지어줬던 이번「5천년 전」의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에 고무되어 우리 국민들에게도 자신들이 간직해온 고유한 문화적 유산들의 가치를 새삼 재인식하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 이번 국내전시의 목적이라 할 수 있겠다.
전시품들은 평소 국내전시를 통해 낯익은 것도 있지만 개중에는 이번 일본전시를 계기로 처음 공개된 것도 적지 않기 때문에, 국내의 미술 수호 가들 에게는 물론 일반국민들에게도 한국고대문화의 정수에 접할 수 있는 다시없는 기회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전시품들은 멀리 선사시대인 신석기시대로부터 가까이는 조선왕조에 이르는 오랜 민족의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이어지고 다듬어진 민족문화재의「베스트」를 일당에 모은 것이라는 점에서 그 자체가 희귀한 민족문화사의 구실역할을 하고도 남는다.
이들이 일본에 전시되는 동안, 그곳의 저명한 학자들을 비롯하여 미술가·작가·평론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가정주부에 이르기까지 기록적인 인파를 모을 수 있었던 소이도 실은 이 같은 교육적 기능이 뛰어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본인들은 동양세계 전체를 통해서도 뛰어난 고유의 양식을 담은 우리 청동기시대의 유물에 접하고 정교하고 화려하기 비길 바 없는 삼국시대 금장식품들의 미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있어 더욱 논리적인 발견은 자신들의 문화의 원류가 바로 한국이었음이 이 제이 이상 의심할 수 없을 만큼 확연하게 입증됐던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전시품을 보면서도 우리 국민이 느껴야하고 또 배워야할 것은 일본인들의 그것과는 스스로 다른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우리로선 우리 조상들이 남긴 찬란한 문화적 유산에 대한 긍지를 갖는 것까지는 좋으나 그것 때문에 무분별하게 자만하고 존대해져서는 곤란하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도리어 우물안 개구리격의 문화적 시대도착증에 걸릴 위험마저 없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번 전시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조상들이 남긴 문화적 유산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반추해보는 일이어야 한다.
대륙접촉지점인 한반도라는 기구한 지정학적 조건하에서도 우리조상들이5천년을 한결같이 이어올 수 있었던 강인하고 슬기로운 문화창조에의 의지를 본받아 그것을 어떻게 현재 및 미래에 살리는가 하는 결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뜻에서 이번 국내 전은 그 교육적 기능을 최고도로 살리기 위한 좀더 치밀한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번 전시기간 중에 좀더 많은 국민들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참관의 기회를 확대하여 친절하고 핵심을 파고든 현장에서의 보물교육「프로그램」이 있어야겠다는 것이다.
관심 있는 사람만이 참관하고 마는 전시회, 그저 주마간산 식의 과객들을 모으는 전시회가 되지 않도록 좀더 충실한 전시목록 해설서를 작성하고 이러한 문화적 유산을 향후의 민족사전개와의 연관에서 어떻게 활용할 수 있겠는가 자문자답할 수 있게 하는 교육적 고려가 아쉽다는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